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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세월을 머금은 나무(木)를 만나다.
양석중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이수자 양석중

 

사람은 세상을 등지고 떠나도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세월을 먹고 자란다. 세월을 머금은 나무로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짓고 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고 살다가 나무로 만들어진 관 속에 들어가 묻혔으며, 무덤 옆에 나무를 심었다. 실로 한국인의 삶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깊게 뿌리내린 나무라 할 만한다. 이런 나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인 가운데 궁궐이나 불전 또는 가옥을 짓는 건축과 관계된 일을 하는 장인을 대목장(大木匠)이라 하며 장과 농, 문갑, 탁자 등 실내에서 사용되는 가구를 제작하는 장인을 소목장(小木匠)이라 한다. 제대로 된 소목장은 나무의 성질을 잘 살펴 하나도 버리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줄 안다.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말 없는 나무를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시키는 것이 소목장의 일이다.

 

나무와 함께한 제2의 인생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 역사의 굴곡진 흔적이 남아 있다 하여 ‘호국의 섬’ 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터를 잡은 양석중 장인은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나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다 홀연 목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일을 찾다 나무를 만나게 됐다.

 

“회사 그만두고 나와 보니 무언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하고 싶었어요. 밥벌이 하러 선배의 사업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 회사 사무실의 나무 문짝 만들어 준 것이 소목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요.”

장인의 공방 앞마당에는 자연건조를 위해 차곡차곡 목재들이 쌓여있다.
장인의 공방 앞마당에는 자연건조를 위해 차곡차곡 목재들이 쌓여있다.

그 길로 장인은 한옥 짓는 업체에서 하루 일당 4만원을 받으며 서까래(전통한옥에서 지붕을 받치는 나무) 깎는 일을 하다 깊이 있는 전통 목공예 기법을 배우고자 2003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과정을 수료하고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우리 스승님은 나무장이의 삶을 택한 제 인생에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이에요. 그 고마움과 가르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뒤늦게 시작한 목수의 삶에 빛이 되어준 스승의 가르침을 지표로 삼아 깨우치고 익혀온 세월은 지난 2013년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의 반열에 까지 이르게 하였다.

 

나무의 두 번째 인생을 책임지다

사람은 태어나 한 번의 인생을 살지만 나무는 두 번의 인생을 산다. 다시 말해,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을 키우다 운명처럼 생(生)이 다 하면 누군가의 손에 그 몸을 맡기고 제 2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나무의 두 번째 인생을 책임지는 손(手). 그 손이 바로 양석중 장인의 손이다. 무엇보다 목공예는 숙련된 장인의 손 기술을 중심으로 자기성찰로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목공예의 디자인적인 완성도는 숙련된 장인의 손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시작한 만큼 나무를 다루는 섬세한 공예기법과 나뭇결(목리)을 잘 살려 짜임새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그는 지난 2013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의 대통령상을 시작으로 국내외 여러 작품전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의 최애 기물(己物)이라고 불리는 사방탁자의 형태를 재구성한 와인 수납대와 동서양의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는 입식(立式) 생활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통적이면서도 날렵한 선을 담고 있어 전통공예의 멋스러움과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 나무를 자르는 양석중 장인의 손.
    나무를 자르는 양석중 장인의 손.

  • 양석중 장인은 못을 박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 짜맞춤으로 가구를 만든다.
    양석중 장인은 못을 박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 짜맞춤으로 가구를 만든다.

  • 보통 목수들은 기준목(기존 가구의 치수를 재어 만든 자尺)을 만들어 가구를 만든다면, 양석중 장인은 가구의 도면을 1대1 크기로 그려놓고 수없이 고쳐가며 아름다운 비례를 한 치 오차 없이 얻어낸다. 이런 꼼꼼한 도면 작업이 아름다운 비례미를 자랑하는 비결이다.
    보통 목수들은 기준목(기존 가구의 치수를 재어 만든 자尺)을 만들어 가구를 만든다면, 양석중 장인은 가구의 도면을 1대1 크기로 그려놓고 수없이 고쳐가며 아름다운 비례를 한 치 오차 없이 얻어낸다. 이런 꼼꼼한 도면 작업이 아름다운 비례미를 자랑하는 비결이다.

“작품 구상에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은 바로 저의 아내에요.”

 

아내 이윤정씨는 묵묵히 장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 지지해준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이다.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목수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셋째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생계를 위해 남편한테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하면 순간 남편을 잃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적어도 우리 남편은 가족을 굶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이런 아내의 따뜻한 배려와 믿음이 더해졌기에 장인의 작품이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지혜

좋은 나무를 얻기 위해 그는 전국을 찾아다닌다. 나무는 음력 8월 한가위부터 다음 해 입춘 한 달 전까지의 기간에 벤 것이라야 제 구실을 한다. 그 이유는 모든 나무는 입춘 한 달 전 뿌리로부터 줄기와 가지 쪽으로 수분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것은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게 하는 것이라 칭송해야 할 일이지만 목재 또는 재목의 용도로 적합하지 않다.

 

“봄, 여름철에 벤 나무는 목재로 건조 시키는 데에 문제가 생기고 좀이 슬기 쉬워서 적합한 나무는 아니에요.”

 

가위가 지나면서 수분이 다시 뿌리로 내려가게 되니, 나무를 아무 때나 베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늦가을부터 겨울철이 적합하다. 그 이유는 나무의 뒤틀림이 적기 때문이다. 다만, 높은 산의 고사목(枯死木)은 자연적으로 말라서 죽은 것이니 계절과는 상관없이 좋은 재목이 된다. 지난 2019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태풍 ‘링링’과 ‘타파’가 지나가면서 바람에 취약한 노거수(老巨樹) 몇 그루가 쓰러졌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썩어 들어간 나무들은 꼭 골다공증 걸린 사람마냥 강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의 상징이었던 500살 먹은 느티나무도 속절없이 부러져 그 자태를 흠모했던 많은 이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다행히 연미정이 다치지 않게 쓰러졌는데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은 느티나무가 안간힘을 써 그리됐다고 칭송했다.

 

“제가 쓰러진 느티나무의 갸륵함을 기려 강화반닫이로 만들어 재능기부 하겠다고 했더니 처음엔 강화군과 토지주가 폐목재처리방침을 몰라 애간장을 좀 태웠었죠.”

 

존엄한 느티나무의 죽음 속에 인간도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500살 먹은 느티나무를 활용해 섬세하고 치밀한 세공으로 조선시대 왕실용으로 쓰인 ‘강화반닫이’를 재현해주목을 받았다.

 

먹감삼층장(양석중作)
먹감삼층장(양석중作)
사방탁자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와인을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든 '와인수납대' (2015. 프랑스 Saint Entienne 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
사방탁자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와인을 수납할 수 있도록 만든 '와인수납대' (2015. 프랑스 Saint Entienne 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
전통 머릿장 형태를 바탕으로 조각보에서 차용한 문양을 문짝에 담아 단아하고 화사한 한복의 느낌을 담은 작품이다(양석중 作)
전통 머릿장 형태를 바탕으로 조각보에서 차용한 문양을 문짝에 담아 단아하고 화사한 한복의 느낌을 담은 작품이다(양석중 作)
삼층장(2013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作)
삼층장(2013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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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으로 천천히 살아가다

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여느 직장인의 삶처럼 쳇바퀴 돌 듯 일상의 반복에 지쳐갔고 그래서 나무와 함께 한 제2의 인생은 지나온 삶과는 정 반대로 느린 삶을 살고자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공방이름 또한 ‘와우(蝸牛) 목 공방’ 이다.

 

“느리지만 묵묵히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작업하려고 지은 이름이에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쩌면 작고 느린 하찮은 생물체라고 여길법한 가장 보통의 존재인 달팽이가 여러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보통의 존재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생명체로 새롭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빠르게 흘러가고 발전해가는 사회 속에서 누구나 삶의 속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가 나무와 함께 선택한 삶의 철학은 ‘삶의 방향과 목표만 있다면 속도는 결코 중요치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능수능란하고 노련한 결정지능과 총명하고 민첩한 유동지능이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하는 시대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성공이 아닌 성장을, 자리가 아닌 역량을, 넓이가 아닌 깊이를, 고립이 아닌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 이로써 자유롭고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대한민국의 장인(匠人)이며 그 주인공이 양석중 소목장이다.

저자 정보 : 서주희 문화캐스터(KBS)
출처 :
월간민화(www.artmi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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