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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江陵端午祭)
강릉단오제는 2005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강릉단오제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축제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변화를 겪으면서도 강릉단오제는 영동 지역의 주민을 하나로 묶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에도 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의 전승로이자 재창조의 장이 되고 있다. 강릉은 한반도의 옛 나라인 동예의 땅이다. 기록에 따르면 예국에서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축제를 행하였는데 무천이 추수감사제라면 5월 단오제는 상대적으로 곡물의 성장 의례적 성격을 띠는 파종기 축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강릉단오제의 역사는 매우 깊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구체적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추강 남효온의 『추강냉화(秋江冷話)』에는 매년 3, 4, 5월 중 택일하여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흘 동안 음주 가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에는 태조 왕건이 신검을 토벌할 때 당시 강릉 지역의 호족이었던 왕순식에게 태조가 말하기를 “꿈에 이상한 중이 갑옷을 입은 병사 3천을 거느리고 온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그대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도와주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하였고, 또한 왕순식이 “제가 명주에서 출발할 때 대현에서 승사가 있어 제사를 지냈는데 대왕이 보신 꿈이 이것입니다”라고 하여 대관령 성황사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강릉단오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강릉 출신 허균이 남겼다. 허균은 강릉단오제를 직접 보고 기록을 남겼는데 제사를 받는 대상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썼다. 김유신은 어려서 명주에 유학하여 무술을 익히고 삼국을 통일한 후 죽어서 대관령 산신이 되었고 이 신이 영험하여 해마다 5월이면 대관령에 가서 신을 맞이하여 즐겁게 해 준다고 기록하였다. 그래서 신이 즐거우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노하면 천재지변을 주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명주 사람들이 모두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신을 섬겼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강릉단오제의 구체적인 역사는 알 수 없으나 강릉단오제가 예부터 민중 중심의 행사였으며 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진 민관공동의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강릉단오제의 중요 제의(祭儀)는 강릉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들이 제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강릉단오제는 상하가 함께 했던 고대 제의가 지닌 축제적 모습을 온전히 지닌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강릉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 단오제의 절차 단오제의 행사는 음력 4월 5일 신주근양(神酒謹釀,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는 일)부터 음력 5월 7일 송신제(送神祭, 신을 대관령으로 보내는 제사)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서 펼쳐지는데, 제사의 대상은 대관령 산신(김유신장군으로 전해짐)과 국사성황신(國師城隍神, 범일국사(梵日國師)라고 전해짐)이며 단오제를 지내지 않으면 이 지역에 큰 재앙이 미친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단오제는 음력 4월 15일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신목(神木)을 모시고 내려와 구산성황당(邱山城隍堂)을 거쳐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당에 모셨다가 행사 전날인 음력 5월 3일 저녁 영신제(迎神祭)를 지내고 위패를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에 옮겨 모심으로 강릉단오제의 서막이 시작된다. 단오장에서는 5일간 아침마다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풍농, 풍어 등을 기원하며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제를 올린다. 그밖에 관노가면극, 그네, 씨름, 농악경연대회, 농요경창대회 등 수많은 민속놀이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South Korea 2008 -
농악(農樂)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농악은 타악 합주(때때로 관악기가 포함되기도 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공연 예술 장르이다. 농악은 마을신과 농사신을 위한 제사, 액을 쫒고 복을 부르는 축원, 봄의 풍농 기원과 추수기의 풍년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 행사, 그리고 전문 농악패들에 의한 여흥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어 왔다. 마을의 흥겨운 행사치고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의 떠들썩한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농악 공연이 북돋는 흥겨운 기분, 즉 신명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의 장단은 흔히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이 많이 사용된다. 쇠와 가죽으로 음색을 내는 꽹과리와 장구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한편,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에 강세를 만들어준다. 소고를 연주하는 연행자들은 음악 연주보다는 춤에 더 치중한다. 농악 춤은 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춤과 함께 단체가 만드는 진짜기, 상모놀음 등이 포함된다.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이 재미난 촌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희가 진행되고, 버나돌리기나 어린 아이를 어른 연행자의 어깨 위에 태워 재주를 보여주는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된다. 농악은 기층민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연행되고 향유되지만 신명나는 공연을 보여주는 전문연희패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전문적인 레퍼토리는 타악 4중주에 해당하는 ‘사물놀이’와 넌버벌(non-verbal) 연극 ‘난타’와 같은 작품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런 시도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보다 광범한 청중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다.
South Korea 2014 -
사기장 (沙器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구워내는 방법에 따라 도기(陶器), 자기(瓷器)로 나누어 지는데, 백토 등이 혼합되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사기(자기)라 한다. 사기장이란 사옹원(司饔院)에서 사기를 제작한던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천하제일의 비색청자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인 사옹원(司甕院)에서 자기를 제작하였는데, 경기도에 분원을 설치하여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기를 특별히 제작하였다. 조선 후기 관요(정부 관리하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폐쇄되면서 도공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져 민요(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번창하였다. 사기의 제작과정은 사토를 채굴하는 것부터 구워내는 작업까지이다. 우선 모래흙(사토)을 구한 후 물에 넣어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비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순수 흙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물레작업을 한다. 만들어진 그릇을 가마에 넣고 초벌구이와 유약을 바른 뒤 다시 재벌구이를 해서 구워낸다. 전통적인 나무로 만든 발물레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는데, 이러한 물레 돌리는 방법이 한국 도자기 장인들의 기술이다. 사기장은 서민적이면서 활달한 조선분청사기와 단아한 선비의 향을 담고 있는 조선백자와 같이 한국적 정감과 멋을 나타내는 전통공예기술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South Korea -
금속활자장 (金屬活字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은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어서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장인을 말한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려시대에 창안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종 19년(1232) 강화도에 천도한 고려 조정이 개경의 서적점(書籍店)에서 찍은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다시 새겨낸 것이 전하며, 국가전례서인 『상정예문(詳定禮文)』을 금속활자로 찍은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금속활자 인쇄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관서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개량·발전시켰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주조기법으로 제작된다. 금속활자의 제작과정은 글자본만들기, 원형만들기, 주조작업, 마무리작업 등 크게 4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주조기법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활자 하나하나를 밀랍으로 만드는 밀랍주조기법으로 초기에 주로 쓰인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활자의 원형으로 주물틀을 만든 후 찍는 모래주조기법으로 조선시대 초조갑인자 이후 보편화된 방법이다. 금속활자는 글씨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과학과 기술을 총망라하여 만들어낸 종합예술품으로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전통공예기술이다.
South Korea -
대목장(大木匠),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
대목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전통적으로 ‘목장(木匠)’또는 목수라고 불렀다. 목장이 담당하는 여러 가지 작업 중에서 ‘대목’은 특히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 등과 같은 목조 건축물을 짓는 일을 일컫고, 그런 대목의 일을 담당하는 목수를 대목장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통적인 목조건축물을 일컬을 때에도 ‘대목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목장은 ‘소목장(小木匠)’과 ‘대목장(大木匠)’으로 구분되는데 소목장은 목재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가구나 생활용품인 궤·문갑·책상·밥상·장롱 등을 제작하는 목수를 말하며, 대목장은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목수를 일컫는다. 대목장은 전통 건축물의 기획·설계·시공뿐만 아니라 대목장 아래에서 일하는 목수들에 대한 관리 감독까지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장인이다. 따라서 대목장의 기술은 수십 년에 걸친 교육과 현장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 대목장은 전통 기술과 지식을 건축 과정에 적용한다. 따라서 대목장은 유네스코협약 제2조 제1항에서 ‘지식 및 기술’로 정의한 무형유산의 정의와 합치하며, 전통의 자재 및 공법을 따르기 때문에 협약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전통 공예기술’에도 합치한다. 한국에서 목조 건축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창덕궁과 불국사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물도 역시 대목장의 지휘 하에 건축되었다. 이러한 보물과 같은 건축물들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 자체로서 평가받았다기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전통적 건축물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이러한 이유로 대목장은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계승자이자 보호자로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인식은 대목장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건축물을 완성하는 작업은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동시에 요구한다. 대목장은 전통 기법에 따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복원하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전통 건축물을 재창조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그 과학적·예술적 기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목공 전통의 재창조에 기여하고 있다.
South Korea 2010 -
악기장 (樂器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이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고구려의 벽화 등을 통해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국악기는 약 60∼70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가 가장 대표적이다. 현악기는 울림통을 오동나무로 하고 밑판을 밤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제작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장식품의 조각은 대추나무나 흑단, 향나무 등을 많이 이용한다. 현악기 이외에도 아쟁·대쟁·호금 등이 주류를 이루고 와공후·수공후·당비파·향비파·양금·금과술 등이 제작되고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1995년 3월 16일 북 만드는 공예기술인 북메우기 종목을 악기장에 통합하였으며, 2012년 7월 23일 궁중의례 시 아악연주에 사용하는 편종·편경 제작 기능을 추가 지정하였다.
South Korea -
매듭장 (매듭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이란 끈목多繒을 사용하여 여러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끈목은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해서 3가닥 이상의 끈을 짜는 것을 말하는데, 그 종류에는 둘레가 둥근 끈으로 노리개나 주머니끈에 주로 쓰이는 동다회와 넓고 납짝한 끈으로 허리띠에 자주 사용되는 광다회가 있다. 복식이나 의식도구 장식으로 사용되는 매듭은 격답·결자라고 한다. 우리 전통공예의 한 분야인 매듭이 언제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를 정확히 밝히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의 매듭과 술 장식이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짐작된다. 또 우리나라의 매듭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된다. 중국의 매듭은 종류가 다양하고 화려하다는 것이 특징이고, 일본은 매듭 자체의 장식성보다는 끈의 기능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전통매듭은 단색의 끈목을 이용하여 모양을 맺고 아래에 술을 달아 비례미와 율동미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연봉매듭과 국화매듭, 잠자리매듭 등 동식물에서 따온 형태와 명칭이 많다. 매듭을 단순히 기능적인 면만이 아니라 주체를 돋보이는 장식적인 역할을 하되, 화려함보다는 단아한 기품으로 표현하였다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소속의 매듭장이 있었다. 재료로는 명주실, 모시실, 닥나무실, 삼베실, 털실 등이 쓰인다. 끈의 색감, 굵기, 맺는 방법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며 지방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매듭의 이름은 생쪽, 나비, 잠자리, 국화 등 우리가 쉽게 보고 사용하는 온갖 물건, 꽃, 곤충에서 따왔다. 끈이나 매듭의 하단에 다는 것을 술이라 하는데 각종 악기, 교통용구, 불교 도구 등의 장식에 사용하였다. 술 또한 쓰임새에 따라 딸기술, 봉술, 호패술, 선추 등 다양하다. 같은 종류라도 궁중과 지방에 따라 그 품격이 달랐다.
South Korea -
조각장 (彫刻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그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의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 금속조각 기법으로는 평각(平刻)·투각·고각·육각·상감입사(象嵌入絲) 등이 있다. 평각이란 일명 음각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쪼아서 나타낸다. 투각은 바탕면의 문양에 따라 필요없는 부분을 정으로 쪼거나 오려서 빼낸다. 고각은 바탕면에 무늬를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도록 한다. 육각은 가장 어려운 기법으로 기물의 외면과 내면에 정으로 두들기거나 오그려서 무늬를 나타낸다. 상감입사는 바탕에 홈을 파고 그 자리에 금·은·오동선 등을 넣은 후 빠지지 않게 다진다. 재료는 금·은·철·석·연·아연 등으로 다양하나 주로 은을 사용한다. 무늬는 산수·화조(花鳥)·구름과 용·덩굴무늬 등이 일반적이고, 조선말 이후에는 아름답거나 좋은 뜻을 지닌 문양을 주류를 이룬다.
South Korea -
채상장 (彩箱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채상장(彩箱匠)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을 들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 또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언제부터 채상장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가구로서 애용되었고, 귀하게 여겨졌던 고급공예품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사대부 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하였으며, 주로 옷·장신구·침선구·귀중품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채상의 제작기술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떠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대나무껍질을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 다음, 떠낸 대나무 껍질을 물에 불린 후 그것을 무릎에 대고 일일이 다듬어 정리한다. 염색을 하고 나서 1∼5가닥씩 엇갈려 가며 엮는다. 모서리와 테두리에 남색이나 검정색 등 바탕무늬와 어울리는 비단으로 감싸면 완성된다. 채상의 무늬는 완자·수복강녕·십자·번개·줄무늬 등 주로 길복(吉福)을 추구하는 길상적인 무늬이다.
South Korea -
유기장 (鍮器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은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신라시대에는 유기를 만드는 국가의 전문기관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더욱 발달하여 얇고 광택이 아름다운 유기를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는 기술이 퇴화한 듯하였으나 18세기에 이르러 다시 성행하여 사대부 귀족들은 안성지역에 유기를 주문하여 생산하도록 하였다. 유기는 대표적인 구리 합금 금속으로서 각 성분비율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구리에 주석을 섞는 비율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구리와 아연을 합금하여 만든 그릇은 황동유기라 하는데 노르스름한 빛깔에 은은한 광택이 난다. 구리에 니켈을 합금한 것은 백동유기라 하며 흰 빛을 띤다.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 등이 있다. 방짜유기는 북한의 납청유기가 유명하다. 방짜유기는 녹인 쇳물로 바둑알 같이 둥근 놋쇠 덩어리를 만든 후 여러 명이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로 만든다. 방짜로는 징이나 꽹과리, 식기, 놋대야 등을 만들 수 있다. 주물유기는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원하는 기물을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안성의 맞춤유기는 ‘안성맞춤’이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다. 유기장은 지역별로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하였고 실용성이 높은 고유의 공예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전통적인 금속공예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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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粧刀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일상생활이나 호신용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 양반 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휴대했다. 조선 후기부터는 장도가 몸단장을 하는 노리개로서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정교하게 발달하였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한다. 장도는 모양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칼집장식이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뉘는데,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그 외에도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부르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낙죽장도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칼로서 일반 은장도와 달리 선비의 칼로 알려졌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하며 종류 또한 다양하여 한국적 우아함과 장식용으로 뛰어난 공예미를 나타내고 있다. 각종 재료를 사용하는 장도의 제작기법은 조선시대의 우수하고 다양한 공예기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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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장 (小木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 목기, 목가구(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수는 신라때부터 있었고,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때부터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한 목가구가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장롱은 재료에 따라 귀목장롱·솔장롱·오동장롱이 있고 칠을 안한 백골 장롱, 칠을 한 칠장롱, 무늬가 없는 민장롱, 들기름을 먹인 종이를 바른 발림장롱으로 분류된다. 즐겨 사용하는 무늬는 삼호장·성티무늬·뇌문(번개무늬)·겹귀무늬·홑귀무늬 등이 있고 제작도구로는 톱 종류와 대패·등밀이·장도리·송곳·놋줄 등이 사용된다. 소목장의 기능은 무늬가 있는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전통 목공예기법으로 민속공예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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