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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大木匠),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
대목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전통적으로 ‘목장(木匠)’또는 목수라고 불렀다. 목장이 담당하는 여러 가지 작업 중에서 ‘대목’은 특히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 등과 같은 목조 건축물을 짓는 일을 일컫고, 그런 대목의 일을 담당하는 목수를 대목장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통적인 목조건축물을 일컬을 때에도 ‘대목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목장은 ‘소목장(小木匠)’과 ‘대목장(大木匠)’으로 구분되는데 소목장은 목재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가구나 생활용품인 궤·문갑·책상·밥상·장롱 등을 제작하는 목수를 말하며, 대목장은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목수를 일컫는다. 대목장은 전통 건축물의 기획·설계·시공뿐만 아니라 대목장 아래에서 일하는 목수들에 대한 관리 감독까지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장인이다. 따라서 대목장의 기술은 수십 년에 걸친 교육과 현장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 대목장은 전통 기술과 지식을 건축 과정에 적용한다. 따라서 대목장은 유네스코협약 제2조 제1항에서 ‘지식 및 기술’로 정의한 무형유산의 정의와 합치하며, 전통의 자재 및 공법을 따르기 때문에 협약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전통 공예기술’에도 합치한다. 한국에서 목조 건축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창덕궁과 불국사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물도 역시 대목장의 지휘 하에 건축되었다. 이러한 보물과 같은 건축물들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 자체로서 평가받았다기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전통적 건축물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이러한 이유로 대목장은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계승자이자 보호자로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인식은 대목장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건축물을 완성하는 작업은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동시에 요구한다. 대목장은 전통 기법에 따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복원하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전통 건축물을 재창조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그 과학적·예술적 기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목공 전통의 재창조에 기여하고 있다.
South Korea 2010 -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민족이라면 거의 모두가 아리랑을 알고 즐겨 부른다. 아리랑은 단일한 하나의 곡이 아닌 한반도 전역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곡조로 전승되었다. 전문가들은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의 수가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노래로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여음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사설로 발전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아리랑의 가사(사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여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사설)” 아리랑의 사설은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 일반 민중이 공동으로 창작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사랑, 연인과의 이별, 시집살이의 애환, 외세에 맞선 민족의 투쟁 등 민중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노랫말에 담았다. 아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한국의 전통음악이라는 영역을 넘어 초현대적인 한국 문화의 모든 장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리랑은 발라드·로큰롤·힙합 등의 다양한 현대의 대중가요 장르는 물론이고 관현악곡 등으로도 편곡되어 폭넓은 청중에게 호소하며 한민족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의 비공식적 국가(國歌)로 묘사되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는 2011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아리랑 선율을 주제로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피겨스케이트 프로그램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상징의 하나이기도 한 아리랑은 영화·연극·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로, 상품명이나 식당 이름, 방송국 회사 이름 등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South Korea 2012 -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
씨름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민속놀이 중 하나인 씨름은 벨트와 비슷한 모양의 긴 천으로 된 샅바를 허리와 한쪽 허벅지에 두른 2명의 선수가 상대의 샅바를 잡고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여 땅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경기다. 명절이나 장날, 잔치 등의 다양한 행사에서 씨름 경기가 열린다. 마을에서 어떤 장소든 씨름 경기를 할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공동체 구성원 전 연령이 참여할 수 있다. 성인 경기에서 최종 우승자는 풍년을 상징하는 황소를 부상으로 받고, ‘장사’라는 자격을 얻는다. 경기를 마친 후 장사는 황소를 타고 마을을 행진하며 축하를 받는다. 부상으로 소를 수여하는 풍습에는 농사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South Korea 2018 -
영산재 (靈山齋)
영산재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영산재는 모든 중생(衆生)과 영가가 부처, 불법과 승려를 숭앙하여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돕기 위하여 거행된다. 영산재는 한국 불교에서 거행되는 가장 수준 높고 가장 큰 규모의 의식으로, 현세에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는 의식으로 법화경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산재는 참선과 수행의 수단이기도 하다. 영산재의 거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시련(侍輦) : 하늘과 땅의 영가와 모든 성인(聖人)을 맞아들여서 영가를 인도하는 불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성스럽게 의식이 거행되도록 한다. 2. 대령(對靈) : 의식의 주인은 영가,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것, 즉 모든 중생이다. 죽은 영가는 의식에 초청되고, 의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의식이 거행되는 이유를 듣고 불법에 따른 지침을 받는다. 죽은 이의 가족은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음식과 술(법식)을 베푼다. 3. 관욕(灌浴) : 평정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영가의 3가지 업장을 씻어주는 정화 의식이다. 4. 조전점안(造錢點眼) : ‘조전’은 명부(冥府, 저승)에서 사용할 돈을 말하며 ‘점안’은 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외부에서 오는 물질적 축복 속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5. 신중작법(神衆作法) : 의식이 잘 진행되도록 초청된 모든 성스러운 영가에게 다례를 제공한다. 6. 괘불이운(掛佛移運) : 의식의 주인이며 법화경을 가르칠 석가모니 부처, 모든 부처와 불보살이 불법에 따라 영접을 받는다. 7. 상단권공(上壇勸供) : 부처와 보살이 초청된 상태에서 식사를 공양한다. 이 의식에서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로운 은혜로 모든 중생이 행복을 얻고 부처의 진리의 빛이 고통 받는 세계에서 빛날 것을 기원한다. 8. 법문(法門) : 부처를 대신하여 승려가 의식의 목적을 재확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설법한다. 승려는 청중이 진리의 문에 이르도록 법문을 전한다. 9. 식당작법(食堂作法) : 공양 의례는 부처와 불보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에 참석하는 승려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을 상징하며, 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부처가 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10. 중단권공(中壇勸供) : 의례가 잘 진행되도록 의식에 참석중인 모든 신중을 청하여 모시는 의례이다. 또한 의례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축복을 주기를 청한다. 11. 시식(施食) : 의식의 참석자들은 부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죽은 이들은 극락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뻐하는 의식이다. 이 의례는 슬프기 보다는 행복한 의식으로써 떠난 자들을 위해 거행되며 떠난 자들의 극락왕생을 축하하며 기뻐하기 위함이다. 12. 봉송(奉送) 및 소대배송(燒臺拜送) : 의식이 시작될 때부터 모든 중생은 공손한 찬양을 받는데 봉송도 이에 걸맞게 진행된다. 봉송은 죽은 이들이 머물 마지막 종착지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단계이다.
South Korea 2009 -
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선정된 후,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되었다. 서울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14세기~19세기)의 조상들에게 바치는 유교 의례를 하는 곳이다. 종묘제례(宗廟祭禮)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적이 있는 공신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으로, 사직(社稷)과 더불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 종묘 정전의 19개 신실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49위)가 모셔져 있으며, 영녕전 16실에는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34위)를 봉안하고 있다. • 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이러한 조상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당인 종묘에서 수행하며, 조상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도록 간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종묘제례는 왕족의 후손들이 제례를 조직하며 음악, 무용,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의례가 봉행되는 동안, 제관들은 의례복을 입으며 왕은 왕관을, 다른 이들은 관을 써서 복장을 갖추고 음식과 술을 제기에 담아 조상에게 바친다. 종묘제례는 왕실에서 거행되는 장엄한 국가 제사로서, 임금이 친히 받드는 존엄한 길례(吉禮)였다. 유교사회에서는 길례·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家禮)의 다섯 의례(五禮)가 있는데 그중 길례인 제사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이를 ‘효’ 실천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조상에 대한 숭배를 인간의 도리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도로 여겼으며 이러한 법도를 실행하는 제사를 특히 중시하였다. 그래서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나라를 건국하고 번영시킨 왕과 왕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 대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종묘제례의 전통은 조상신 숭배와 효의 개념에 관한 고대 중국 문헌에서 유래하지만 중국에서는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 유교 의례의 고유한 사례로 남아 있다. 종묘제례는 크게 정시제(定時祭)와 임시제(臨時祭)로 나뉘며, 계절에 따라 햇과일이나 곡식을 올리는 천신제(薦新祭)도 있었다. 정시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첫달인 1월·4월·7월·10월과 납일(臘日, 12월에 날을 잡아 지내는 섣달제사)에 지냈으며,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지냈다. 종묘제례는 해방 이후 한때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1969년부터 전주리씨대동종약원이 행사를 주관하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종묘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과 예절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제례는 매우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의례의 절차는 15세기에 정해졌으며 오늘날까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종묘제례의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도록 하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 신관례(晨祼禮, 왕이 제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드림) →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 철변두(撤籩豆, 제상에 놓인 고기나 과일을 거둠) →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된다. 종묘제례는 최고의 품격으로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며, 이를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함께 종묘라는 조형적 건축공간에서 진행되는 종묘제례의 장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은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종합예술의 정수이며, 5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한국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종묘제례가 봉행되는 동안 연주되는 음악으로 기악(樂)과 노래(歌)에 춤(舞)이 함께 연행된다. 음악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 11곡이 한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편종, 편경, 방향(方響)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을 이루고, 여기에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진다. 이 위에 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구사한다. 정전 앞 계단 위(상월대)에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등가(登歌)라 하고, 계단 아래 뜰(하월대)에서 노랫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軒架)라고 부른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의 간결하고 힘찬 노래는 위대한 국가를 세우고 발전시킨 왕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치와 무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용佾舞(일무)인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곁들여 진다. 무용의 문무와 무무는 8줄로 구성된 64명의 무용수가 추며, 유교 문헌에 나오는 대로 대립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음(陰)과 양(陽)을 표현한다. 문무는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조화롭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보태평지악에 맞추어 왼손에는 피리종류인 약을 오른손에는 깃털을 단 적(翟)을 들고 춤을 추는 데 왼쪽으로 첫걸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무는 양을 상징한다. 무무는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정대업지악에 맞추어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들고 추며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며 음을 상징한다.
South Korea 2008 -
가곡(歌曲), 국악 관현반주로 부르는 서정적 노래
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 음악에서 정가란 정악(正樂)에 해당하는 성악곡을 일컫는다. 가곡·가사(歌辭)·시조(時調)가 정가이며, 이 곡들은 상류 계층 사람들이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부르곤 했다. 가사나 시조와 같은 정가의 형식과 달리, 가곡은 6현 치터인 거문고, 가로로 부는 커다란 대나무 플루트인 대금, 12현 치터인 가야금, 피리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가곡은 음악적·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가곡은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2조 1항에 명시된 ‘공동체와 집단 및 개인이 스스로 문화유산의 일부분이라고 인식하는 관습·표상·표현 그리고 지식 및 기술’이라는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에 합치한다. 가곡은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2조 2항의 ‘공연예술’ 영역에 해당된다. 전통 가곡은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이 불러온 고유한 예술 형식으로서, 서양의 성악과는 다르다. 가곡은 조선 시대(1392년~1897년) 상류 계층에서 유행하던 성악곡이다. 가곡은 남성의 노래인 남창 26곡과 여성의 노래인 여창 15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남성 가창과 여성 가창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창의 모든 음계는 몸속에서 울려 나오는 힘찬 소리인 겉소리로 부른다. 반면에 여창은 겉소리와 고음의 가냘픈 소리인 속소리를 사용한다. 가곡은 장엄하면서도 평화로운 음계인 우조(羽調)와 구슬픈 음계인 계면조(界面調)를 사용하고, 16박 또는 10박 장단으로 연주된다. 반주는 보통 6현 치터인 거문고, 12현 치터인 가야금, 세피리(겹혀의 작은 악기), 가로로 부는 플루트인 대금(大笒), 바이올린 같은 악기인 해금(奚琴), 모래시계 모양의 드럼인 장구 등의 관현악기로 연주된다. 덜시머(hammered dulcimer)와 같은 양금(洋琴)과 대나무 플루트인 단소(短簫)가 반주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가곡은 오랜 세월동안 변형되지 않고 보전되어 왔으며 가곡 명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전수되고 있다. 가곡은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유산이다.
South Korea 2010 -
줄타기
줄다리기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줄타기는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로, 단순히 줄 위를 걷는 것만이 아니라 노래·춤·곡예를 하며 두 지점 사이에 매단 가느다란 줄 위에서 재담을 늘어놓는 예술이다. 하지만 줄타기는 혼자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줄 위를 걷는 줄타기 곡예사가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지상에서 줄타기 곡예사가 하는 곡예와 재담에 반주를 하는 악사들이 있으며, 곡예사와 대화 상대가 되어 재담을 받아주는 어릿광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이다. 오늘날 줄타기 공연은 특히 봄과 가을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에 자주 초대받아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웃게 해준다. 줄타기는 거의 모든 지역 축제에 초대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친숙하게 느끼는 전통 공연예술 중의 하나이다. 줄판 전체는 오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흥미를 이어 가게 하려면 곡예와 재담과 음악으로 구성을 세심하게 짜야 한다. 줄타기는 간단한 곡예로 시작하여 줄에서 오르락내리락 뛰고, 구르고, 재주넘고, 줄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점차 더 어려운 묘기로 나아가며 약 40가지의 갖가지 줄타기 기술을 선보인다. 곡예를 하는 사이사이에 농담도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들은 이러한 아찔한 묘기를 마음을 조이며 관람한다. 음악 및 춤 등 다양한 예술을 담고 있는 줄타기는 단순히 줄타기 기술을 보여 주는 여흥이 아니라 예부터 전해 내려온 종합예술이자 놀음이다. 그리고 줄타기 곡예사와 어릿광대 사이에 대화를 이어 가며 관객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전통의 줄타기는 다른 나라의 유사한 줄타기 예술과는 차별화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줄타기는 일방적으로 재미와 짜릿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연행자와 관객들 사이에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예능으로서 관객을 포함하여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연의 분위기에 스스로를 맞추게 된다. 그래서 줄타기 공연은 연행자와 관객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줄타기는 고유하며 가치가 있다.
South Korea 2011 -
처용무 (處容舞)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처용무란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에서 5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궁중 무용을 일컫는다. 때문에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궁중 무용으로는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1971년 1월 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남자 무용수들이 연행(演行)하는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춤이다. 통일신라 말기(B.C. 57년~A.D. 935년), 헌강왕(憲康王)이 행차하여 한반도 남동쪽 울산시 인근 개운포(開雲浦, 오늘날의 황성동 세죽마을)에 이르렀다. 왕이 환궁 차비를 하였을 때 짙은 운무(雲霧)가 낀 하늘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 그 이유를 물으니, 일관(日官)이 “이는 동해(東海)의 용(龍)이 부리는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자, 먹구름이 걷히고 동해 위로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솟아올라 춤을 추었다. 그 중 ‘처용(處容)’이라는 이름의 한 아들이 헌강왕을 따라 수도인 경주로 와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관직을 얻어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역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어 무릎을 꿇고 앉아 사과하였다.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고려 왕조 후기(918년~1392년)까지 처용무는 무용수 1인이 공연하였으나, 조선 왕조 세종(재위 1418년~1450년) 때에 이르러 무용수 5명이 춤을 추게 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음력 섣달그믐날, 묵은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행하는 나례 의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다고 한다. 5명의 무용수는 각각 서쪽·동쪽·북쪽·남쪽·중앙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의 의상을 입었다. 처용무에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어 장엄하고 활기찬 춤사위에서 씩씩하고 호방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처용무는 수제천(壽齊天, ‘하늘만큼 영원한 생명’) 음악에 맞추어 왕을 향해 나아가 “신라성대소성대(新羅盛代昭盛代, ‘밝고 번성한 시대, 신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처용가〉의 첫 수를 ‘언락(言樂)’이라는 서정적인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용수들은 왕을 향해 인사하고 향당교주(鄕唐交奏,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을 번갈아 연주)에 맞추어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세영산(細靈山)의 느린 가락에 맞추어 무용수들은 정방형을 이루며 산작화무(散作花舞, ‘꽃의 형태로 흩어짐’)를 춘 후 오른쪽으로 돈다. 십자형으로 대열이 바뀌면 음악도 삼현도드리(3개 현악기로 연주하는 느린 6/4 박자 음악)로 변경된다. 수양수무(垂揚手舞, ‘팔을 들어 올려 흔들며 추는 춤’)와 무릎디피무(‘무릎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춤’)을 마친 후 5인의 무용수는 대열을 원형으로 바꾸고 왼쪽으로 돈다. 다시 한 번 일렬로 대열을 바꾸고 나서 무용수들은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 ‘머나먼 산 또는 평야로’)’으로 시작하는 〈처용가〉를 다시 가곡 우편(羽編) 가락에 맞추어 부른 후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 도드리의 일종)에 맞추어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잎과 흐르는 물’)를 추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용 탈은 팥죽색 피부에 치아가 하얗고, 납 구슬을 단 주석 귀고리가 달려 있다. 검은색 사모에는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장식한다. 팥죽색과 복숭아 열매는 벽사(辟邪, 잡귀를 물리침)를, 하얀 모란은 진경(進慶, 기뻐할만한 일로 나아감)을 상징한다.
South Korea 2009 -
농악(農樂)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농악은 타악 합주(때때로 관악기가 포함되기도 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공연 예술 장르이다. 농악은 마을신과 농사신을 위한 제사, 액을 쫒고 복을 부르는 축원, 봄의 풍농 기원과 추수기의 풍년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 행사, 그리고 전문 농악패들에 의한 여흥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어 왔다. 마을의 흥겨운 행사치고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의 떠들썩한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농악 공연이 북돋는 흥겨운 기분, 즉 신명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의 장단은 흔히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이 많이 사용된다. 쇠와 가죽으로 음색을 내는 꽹과리와 장구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한편,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에 강세를 만들어준다. 소고를 연주하는 연행자들은 음악 연주보다는 춤에 더 치중한다. 농악 춤은 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춤과 함께 단체가 만드는 진짜기, 상모놀음 등이 포함된다.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이 재미난 촌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희가 진행되고, 버나돌리기나 어린 아이를 어른 연행자의 어깨 위에 태워 재주를 보여주는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된다. 농악은 기층민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연행되고 향유되지만 신명나는 공연을 보여주는 전문연희패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전문적인 레퍼토리는 타악 4중주에 해당하는 ‘사물놀이’와 넌버벌(non-verbal) 연극 ‘난타’와 같은 작품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런 시도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보다 광범한 청중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다.
South Korea 2014 -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 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키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제례의식의 각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종묘악장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무인 보태평지무(선왕들의 문덕을 칭송)와 무무인 정대업지무(선왕들의 무공을 찬양)가 곁들여진다. 종묘제례악은 본래 세종 29년(1447) 궁중회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하였으며 세조 10년(1464) 제사에 적합하게 고친 후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는 종묘대제에서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연주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South Korea 2008 -
갓일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갓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중의 하나로 원래는 햇볕,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모자였으나 주로 양반의 사회적인 신분을 반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갓은 넓은 의미로 방갓형과 패랭이형 모두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흑립·칠립·평립이라고 부르며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뉜다.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갓 대우 부분을 말꼬리털 또는 목덜미털을 사용해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서 레코드판처럼 둥글게 얽어내는 과정을 말하며, 입자는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세 가지 과정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따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서 필수품목의 하나였던 갓은 의복의 변화와 단발령 이후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통영, 예천, 제주 등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South Korea -
나전장 (螺鈿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오려서 옻칠로 붙이는 기술이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은,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자개를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자개를 문질러 얇게 만들어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드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나전 무늬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가, 조선 중기에는 화조·쌍학·포도· 사군자 등의 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이다. 자개의 재료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아름답고 우수하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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