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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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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 (宗廟祭禮)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 ‘대제(大祭)’라고도 부른다.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로 정전(19실)과 영녕전(16실)이 있다. 종묘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으나, 해방 후부터는 5월 첫 일요일에 한번만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인 의식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취위(就位) →영신(迎神) →행신나례(行晨裸禮)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籩豆) →망료(望僚)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되며,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 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South Korea 2001 -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 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키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제례의식의 각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종묘악장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무인 보태평지무(선왕들의 문덕을 칭송)와 무무인 정대업지무(선왕들의 무공을 찬양)가 곁들여진다. 종묘제례악은 본래 세종 29년(1447) 궁중회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하였으며 세조 10년(1464) 제사에 적합하게 고친 후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는 종묘대제에서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연주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South Korea 2008 -
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선정된 후,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되었다. 서울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14세기~19세기)의 조상들에게 바치는 유교 의례를 하는 곳이다. 종묘제례(宗廟祭禮)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적이 있는 공신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으로, 사직(社稷)과 더불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 종묘 정전의 19개 신실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49위)가 모셔져 있으며, 영녕전 16실에는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34위)를 봉안하고 있다. • 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이러한 조상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당인 종묘에서 수행하며, 조상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도록 간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종묘제례는 왕족의 후손들이 제례를 조직하며 음악, 무용,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의례가 봉행되는 동안, 제관들은 의례복을 입으며 왕은 왕관을, 다른 이들은 관을 써서 복장을 갖추고 음식과 술을 제기에 담아 조상에게 바친다. 종묘제례는 왕실에서 거행되는 장엄한 국가 제사로서, 임금이 친히 받드는 존엄한 길례(吉禮)였다. 유교사회에서는 길례·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家禮)의 다섯 의례(五禮)가 있는데 그중 길례인 제사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이를 ‘효’ 실천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조상에 대한 숭배를 인간의 도리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도로 여겼으며 이러한 법도를 실행하는 제사를 특히 중시하였다. 그래서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나라를 건국하고 번영시킨 왕과 왕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 대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종묘제례의 전통은 조상신 숭배와 효의 개념에 관한 고대 중국 문헌에서 유래하지만 중국에서는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 유교 의례의 고유한 사례로 남아 있다. 종묘제례는 크게 정시제(定時祭)와 임시제(臨時祭)로 나뉘며, 계절에 따라 햇과일이나 곡식을 올리는 천신제(薦新祭)도 있었다. 정시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첫달인 1월·4월·7월·10월과 납일(臘日, 12월에 날을 잡아 지내는 섣달제사)에 지냈으며,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지냈다. 종묘제례는 해방 이후 한때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1969년부터 전주리씨대동종약원이 행사를 주관하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종묘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과 예절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제례는 매우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의례의 절차는 15세기에 정해졌으며 오늘날까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종묘제례의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도록 하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 신관례(晨祼禮, 왕이 제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드림) →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 철변두(撤籩豆, 제상에 놓인 고기나 과일을 거둠) →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된다. 종묘제례는 최고의 품격으로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며, 이를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함께 종묘라는 조형적 건축공간에서 진행되는 종묘제례의 장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은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종합예술의 정수이며, 5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한국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종묘제례가 봉행되는 동안 연주되는 음악으로 기악(樂)과 노래(歌)에 춤(舞)이 함께 연행된다. 음악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 11곡이 한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편종, 편경, 방향(方響)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을 이루고, 여기에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진다. 이 위에 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구사한다. 정전 앞 계단 위(상월대)에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등가(登歌)라 하고, 계단 아래 뜰(하월대)에서 노랫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軒架)라고 부른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의 간결하고 힘찬 노래는 위대한 국가를 세우고 발전시킨 왕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치와 무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용佾舞(일무)인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곁들여 진다. 무용의 문무와 무무는 8줄로 구성된 64명의 무용수가 추며, 유교 문헌에 나오는 대로 대립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음(陰)과 양(陽)을 표현한다. 문무는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조화롭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보태평지악에 맞추어 왼손에는 피리종류인 약을 오른손에는 깃털을 단 적(翟)을 들고 춤을 추는 데 왼쪽으로 첫걸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무는 양을 상징한다. 무무는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정대업지악에 맞추어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들고 추며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며 음을 상징한다.
South Korea 2008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濟州 칠머리당 영등굿)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혹독한 환경 조건 때문에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기에 힘들었으므로, 섬사람들은 바다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조선시대의 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부도덕한 공양을 가치 있게 여기는 풍습이 있으며, 숲, 호수, 산, 나무, 돌 등의 신령을 받드는 제사가 이루어진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제주도에는 여러 가지 제의적 활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영등굿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등의 때가 되면 잔잔한 바다와 풍어를 기원하는 여러 굿이 섬 전역에 걸쳐 벌어진다. 이들 굿 가운데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가장 중요하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라는 이름은 바람의 여신에 대한 굿임을 의미하지만, 마을의 여러 수호신과 바다의 용왕에게 바치는 굿이기도 하다. 영등은 숭배를 받기도 하지만 바다를 휘저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영등이 섬에 와 있는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제주의 바다는 특히 험난하다. 섬사람들은 영등이 지나가는 자리의 바닷가 조개류는 껍질만 남게 된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영등신이 조개류의 속을 다 까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등이 떠나는 날이 되면 영등은 해안을 따라 씨를 뿌려주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며, 영등이 떠나면서 바다를 다시 맑게 해서 해조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등이 머물고 있는 때는 가장 중요한 때이며, 사람들은 영등에게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칠머리당에서 굿을 벌여 영등이 머무는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영등굿이 치러지는 마을 이름(건입동의 속칭이 ‘칠머리’이다)을 따서 이름 붙인 칠머리당이라는 사당에서는 영등, 그리고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이라는 부부신(夫婦神)을 모신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지역민의 요구(도원수감찰지방관이 영역)를 담당하는 신이며, 요왕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계(요왕해신부인의 영역)를 담당하는 신이다. 사당에는 아래의 표와 같이 남녀 신의 위패를 모신다. 음력 2월 1일이 되면 칠머리당에서는 영등신이 들어오는 영등환영제를 열고 2월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연다. 산신을 모시는 제사(당제)는 한국의 여러 지방에서 음력 정월에 거행되는데, 제주도의 여러 촌락에서도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다. 산신을 모시는 제사와 영등을 모시는 제사는 오직 제주도에서만 ‘영등굿’이라는 하나의 무속 제례와 결합되어 있다. 단순한 영등환영제와 비교할 때, 무속 제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간주되며 용왕에 대한 제사까지 포함하고 있는 영등송별제는 그 행사가 매우 화려하고 더욱 중요하다. 영등환영제는 신령을 불러 사당으로 들이는 것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행운을 비는 초감제(初監祭)로부터 시작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로 이어진 뒤 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3막 연희인 석살림굿으로 끝낸다. 영등송별제도 역시 초감제로 시작하지만, 거기에는 마을의 사당으로 들어오는 의례 본향듦이 포함되어 있다. 본향듦은 마을의 수호신인 남녀 부부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에게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것이다. 이 제례에서는 3명의 고을 관리가 부부 신에게 술을 올리며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빈다. 그 다음에 모든 신에게 술과 떡을 권하여 올리는 추물공연, 용왕과 영등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풍어와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요왕맞이, 수수의 씨로 점을 치고 해조류의 씨를 뿌리는 행사인 씨드림이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수탉을 던져 마을 전체의 재앙을 막기 위한 도액막음을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해녀들을 위해 점을 치는 순서도 있다. 그 다음에 마을의 노인들이 바다에 짚으로 만든 배를 띄워 보내는 배방선이 이어진다. 영감놀이는 배상선 앞에 ‘굿중놀이’로 삽입되어 있다. 영등송별제는 마지막에 여러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끝맺는다.
South Korea 2009 -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
씨름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민속놀이 중 하나인 씨름은 벨트와 비슷한 모양의 긴 천으로 된 샅바를 허리와 한쪽 허벅지에 두른 2명의 선수가 상대의 샅바를 잡고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여 땅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경기다. 명절이나 장날, 잔치 등의 다양한 행사에서 씨름 경기가 열린다. 마을에서 어떤 장소든 씨름 경기를 할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공동체 구성원 전 연령이 참여할 수 있다. 성인 경기에서 최종 우승자는 풍년을 상징하는 황소를 부상으로 받고, ‘장사’라는 자격을 얻는다. 경기를 마친 후 장사는 황소를 타고 마을을 행진하며 축하를 받는다. 부상으로 소를 수여하는 풍습에는 농사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South Korea 2018 -
영산재 (靈山齋)
영산재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영산재는 모든 중생(衆生)과 영가가 부처, 불법과 승려를 숭앙하여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돕기 위하여 거행된다. 영산재는 한국 불교에서 거행되는 가장 수준 높고 가장 큰 규모의 의식으로, 현세에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는 의식으로 법화경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산재는 참선과 수행의 수단이기도 하다. 영산재의 거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시련(侍輦) : 하늘과 땅의 영가와 모든 성인(聖人)을 맞아들여서 영가를 인도하는 불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성스럽게 의식이 거행되도록 한다. 2. 대령(對靈) : 의식의 주인은 영가,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것, 즉 모든 중생이다. 죽은 영가는 의식에 초청되고, 의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의식이 거행되는 이유를 듣고 불법에 따른 지침을 받는다. 죽은 이의 가족은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음식과 술(법식)을 베푼다. 3. 관욕(灌浴) : 평정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영가의 3가지 업장을 씻어주는 정화 의식이다. 4. 조전점안(造錢點眼) : ‘조전’은 명부(冥府, 저승)에서 사용할 돈을 말하며 ‘점안’은 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외부에서 오는 물질적 축복 속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5. 신중작법(神衆作法) : 의식이 잘 진행되도록 초청된 모든 성스러운 영가에게 다례를 제공한다. 6. 괘불이운(掛佛移運) : 의식의 주인이며 법화경을 가르칠 석가모니 부처, 모든 부처와 불보살이 불법에 따라 영접을 받는다. 7. 상단권공(上壇勸供) : 부처와 보살이 초청된 상태에서 식사를 공양한다. 이 의식에서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로운 은혜로 모든 중생이 행복을 얻고 부처의 진리의 빛이 고통 받는 세계에서 빛날 것을 기원한다. 8. 법문(法門) : 부처를 대신하여 승려가 의식의 목적을 재확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설법한다. 승려는 청중이 진리의 문에 이르도록 법문을 전한다. 9. 식당작법(食堂作法) : 공양 의례는 부처와 불보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에 참석하는 승려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을 상징하며, 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부처가 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10. 중단권공(中壇勸供) : 의례가 잘 진행되도록 의식에 참석중인 모든 신중을 청하여 모시는 의례이다. 또한 의례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축복을 주기를 청한다. 11. 시식(施食) : 의식의 참석자들은 부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죽은 이들은 극락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뻐하는 의식이다. 이 의례는 슬프기 보다는 행복한 의식으로써 떠난 자들을 위해 거행되며 떠난 자들의 극락왕생을 축하하며 기뻐하기 위함이다. 12. 봉송(奉送) 및 소대배송(燒臺拜送) : 의식이 시작될 때부터 모든 중생은 공손한 찬양을 받는데 봉송도 이에 걸맞게 진행된다. 봉송은 죽은 이들이 머물 마지막 종착지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단계이다.
South Korea 2009 -
줄타기
줄다리기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줄타기는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로, 단순히 줄 위를 걷는 것만이 아니라 노래·춤·곡예를 하며 두 지점 사이에 매단 가느다란 줄 위에서 재담을 늘어놓는 예술이다. 하지만 줄타기는 혼자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줄 위를 걷는 줄타기 곡예사가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지상에서 줄타기 곡예사가 하는 곡예와 재담에 반주를 하는 악사들이 있으며, 곡예사와 대화 상대가 되어 재담을 받아주는 어릿광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이다. 오늘날 줄타기 공연은 특히 봄과 가을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에 자주 초대받아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웃게 해준다. 줄타기는 거의 모든 지역 축제에 초대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친숙하게 느끼는 전통 공연예술 중의 하나이다. 줄판 전체는 오후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흥미를 이어 가게 하려면 곡예와 재담과 음악으로 구성을 세심하게 짜야 한다. 줄타기는 간단한 곡예로 시작하여 줄에서 오르락내리락 뛰고, 구르고, 재주넘고, 줄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점차 더 어려운 묘기로 나아가며 약 40가지의 갖가지 줄타기 기술을 선보인다. 곡예를 하는 사이사이에 농담도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들은 이러한 아찔한 묘기를 마음을 조이며 관람한다. 음악 및 춤 등 다양한 예술을 담고 있는 줄타기는 단순히 줄타기 기술을 보여 주는 여흥이 아니라 예부터 전해 내려온 종합예술이자 놀음이다. 그리고 줄타기 곡예사와 어릿광대 사이에 대화를 이어 가며 관객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전통의 줄타기는 다른 나라의 유사한 줄타기 예술과는 차별화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줄타기는 일방적으로 재미와 짜릿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연행자와 관객들 사이에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예능으로서 관객을 포함하여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연의 분위기에 스스로를 맞추게 된다. 그래서 줄타기 공연은 연행자와 관객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줄타기는 고유하며 가치가 있다.
South Korea 2011 -
농악(農樂)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농악은 타악 합주(때때로 관악기가 포함되기도 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공연 예술 장르이다. 농악은 마을신과 농사신을 위한 제사, 액을 쫒고 복을 부르는 축원, 봄의 풍농 기원과 추수기의 풍년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 행사, 그리고 전문 농악패들에 의한 여흥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어 왔다. 마을의 흥겨운 행사치고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의 떠들썩한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농악 공연이 북돋는 흥겨운 기분, 즉 신명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의 장단은 흔히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이 많이 사용된다. 쇠와 가죽으로 음색을 내는 꽹과리와 장구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한편,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에 강세를 만들어준다. 소고를 연주하는 연행자들은 음악 연주보다는 춤에 더 치중한다. 농악 춤은 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춤과 함께 단체가 만드는 진짜기, 상모놀음 등이 포함된다.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이 재미난 촌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희가 진행되고, 버나돌리기나 어린 아이를 어른 연행자의 어깨 위에 태워 재주를 보여주는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된다. 농악은 기층민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연행되고 향유되지만 신명나는 공연을 보여주는 전문연희패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전문적인 레퍼토리는 타악 4중주에 해당하는 ‘사물놀이’와 넌버벌(non-verbal) 연극 ‘난타’와 같은 작품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런 시도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보다 광범한 청중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다.
South Korea 2014 -
연등회(燃燈會), 한국의 등 축제
연등회는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음력으로 4월 8일, 부처님탄신일이 다가오면 전국적으로 형형색색의 등불이 밝혀진다. 본래 석가모니 탄신일을 기념하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연등회는 오늘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적인 봄 축제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불교와 연등회에 관한 기록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등회는 고려시대(918-1392)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 의식에서 비롯된 연등회는 전국을 대표하는 봄축제가 되었다. 대중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웃들과 나라 전체를 위해 좋은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등불을 들고 그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등불은 또한 부처의 지혜를 통해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의 마음을 깨우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연례 축제의 주요 요소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으로서 아기 부처의 이미지를 목욕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신성한 의식은 랜턴을 든 참가자들의 공개 행렬에 이은 것이다. 행렬을 마친 참가자들은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위해 모인다. 사회적 경계가 일시적으로 지워지면서 단결 정신은 집단 게임 활동으로 절정에 이른다. 사찰 또는 공공 공간 장식을 목적으로 대나무 틀 또는 한지로 감싼 철사로 만들어진 등불은 전통 장인들이 지식과 기술을 일반 참가자들과 함께 공유하여 만든 것이다. 일반인들은 자신과 가족, 이웃,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복을 비는 마음으로 자신이 만든 연등을 들고 참여할 수 있다.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전체 사회의 마음을 밝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마다 열리는 연등회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아기 부처상을 목욕시키는 관불(灌佛)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연등을 손에 든 대규모 인파의 행렬이 이어지고, 이후 참가자들은 단체 게임에서 절정에 이르는 전통놀이를 하기 위해 모인다.
South Korea 2020 -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늦가을에 기온이 내려가면 많은 한국인들은 김장에 대한 화제를 나눈다. 김장은 한국 사람들이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것을 말한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향신료와 해산물로 양념하여 발효한 한국적 방식의 채소 저장 식품을 일컫는데,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760년 이전에도 한국인의 식단에는 김치가 있었다고 한다. 김치는 계층과 지역적 차이를 떠나 한국인의 식사에 필수적이다. 밥과 김치는 가장 소박한 끼니이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연회에서도 김치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김장’은 한국인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합한 음식 문화로, 지역 생태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인은 특수한 자연 환경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개발했다. 따라서 김장은 한국의 자연적 주거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장 준비는 매해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봄철이면 각 가정은 새우·멸치 등의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2~3년 동안 저장할 천일염을 구입하여 쓴맛이 빠지도록 한다.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아 둔다. 늦가을에 주부들은 날씨를 고려하여 김장에 알맞은 날짜를 결정한다. 김치를 담아 시원하고 안정적인 조건에서 저장하여 최고의 맛을 얻으려면 적절한 온도가 중요하다. 김장 후에 가정마다 김치를 나누어 먹는 관습을 통해, 혁신적인 기술과 창의적인 생각이 공유되고 축적된다.
South Korea 2013 -
택견
택견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택견은 유연하고 율동적인 춤과 같은 동작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한국의 전통 무술이다. 천천히 꿈틀거리고 비트는 유연하고 곡선적인 동작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택견이 춤인지 무술인지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수자에 내재된 에너지는 엄청난 유연성과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택견은 보기에는 정적이고 품위 있으나 근본적으로 활력 있으며 심지어 치명적이다. 택견은 주도권을 장악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상대를 배려할 것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무술이다. 택견은 공격보다는 수비 기술을 더 많이 가르친다. 숙련된 택견 전수자는 부드럽고 물결치는 듯한 움직임으로 신속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고수는 상해를 입히지 않고도 상대를 물러나게 하는 법을 안다. 이러한 점은 전투 스포츠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택견은 이 모두를 가능케 한다. 택견은 자신보다 상대를, 개인보다 집단을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경이로운 스포츠이다. 동작은 직선적이고 뻣뻣하기보다는 부드럽고 곡선을 그리듯 하지만, 전수자를 천천히 그러나 강력히 유도하는 힘이 있다. 숙련된 택견 전수자의 우아한 몸놀림은 한 마리의 학 같지만, 탄력적인 공격 기술은 매와 같이 빠르고 강력하다. 택견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 곡선을 그리는 듯한 움직임이 특징이어서 외적으로는 부드러우나 내적으로는 강한 무술이다. 둘째, 우아함과 품위를 강조하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무술이다. 셋째, 걸고 차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공격과 방어의 조화를 이루는 실질적이고 통합된 무술이다.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지만, 택견은 모든 가능한 전투 방법을 이용하며 다양한 공격과 방어 기술을 강조하는 효과적인 무술이다. 택견은 한국 문화의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인 합일과 온전함을 대표한다. 택견은 삼국 시대(57 B.C. - A.D. 676) 이전부터 행해졌다고 믿어진다. 조선 (1392-1910)에서 민중을 포함한 넓은 대중들 사이에서 행해졌다. 택견의 기본 정신은 '진실성'이다. 택견은 청렴을 지키고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의 학자들의 생각을 내포하고 있는 무예이다. 현재, 한국택견협회는 택견의 전승과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에 위치한 85개의 택견 교육 센터는 택견 전승자의 주요 활동지이며, 이러한 센터 덕분에 한국인들은 쉽게 택견을 접할 수 있다.
South Korea 2011 -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민족이라면 거의 모두가 아리랑을 알고 즐겨 부른다. 아리랑은 단일한 하나의 곡이 아닌 한반도 전역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곡조로 전승되었다. 전문가들은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의 수가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노래로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여음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사설로 발전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아리랑의 가사(사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여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사설)” 아리랑의 사설은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 일반 민중이 공동으로 창작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사랑, 연인과의 이별, 시집살이의 애환, 외세에 맞선 민족의 투쟁 등 민중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노랫말에 담았다. 아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한국의 전통음악이라는 영역을 넘어 초현대적인 한국 문화의 모든 장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리랑은 발라드·로큰롤·힙합 등의 다양한 현대의 대중가요 장르는 물론이고 관현악곡 등으로도 편곡되어 폭넓은 청중에게 호소하며 한민족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의 비공식적 국가(國歌)로 묘사되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는 2011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아리랑 선율을 주제로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피겨스케이트 프로그램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상징의 하나이기도 한 아리랑은 영화·연극·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로, 상품명이나 식당 이름, 방송국 회사 이름 등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South Korea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