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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론조로
조론조로는 느긋하게 걸어가는 말 위에서 여러 커플이 춤 추는 모습을 묘사한다. 조론조로 춤은 몽고 서부에서 유래한 민속 무용인 비이 비옐기(Bii Biyelgee)에서 유래했다. 말과 관련된 비옐기인 조루 모리(Jooroo Mori, 느리게 걷는 말), 조논 하르(Jonon Khar-Noble Black), 잘람하르(Jalam Khar, 검은 말), 모리니 야브달(Moriny Yavdal, 말의 걸음걸이)은 고대로부터 오이라트족(Oirat)에게 전해져 내려와 지금도 널리 퍼져있다.\n\n비이 비옐기는 몽골 민속 무용의 뿌리로, 유목 생활에서 비롯된 춤이다. 몽골의 여러 민족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옐기 춤을 전승해왔다. 저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비옐기 춤을 추며, 그 이름도 모두 다르다. 말 젖(우유)을 뿌리는 동작이 특징적인 차잘(Tsatsal) 비옐기, 세수나 머리 빗기, 직물 짜기, 활쏘기 같은 일상의 동작을 묘사한 운드센(Undsen) 비옐기, 말을 타고 느리게 걷는 동작을 표현하는 조루 모리(Joroo Mori) 비옐기, 머리나 손 위에 우유를 담은 컵을 올려 놓고 춤을 추는 컵(Jamal Khar) 비옐기, 예술성과 심미성에 중점을 둔 우브르무츠(Uvurmuts) 비옐기, 이 밖에 노래를 곁들이는 비옐기도 있다. 몽골 밖에서는 러시아의 '카드릴', 우크라이나의 '고파크', 조지아의 '리제켄카' 춤이 비옐기 계열에 속한다.\n\n전통적으로 비옐기의 무대는 게르 안에 있는 난로 주변의 좁은 공간이었다. 실내에서 관객에게 먼지나 오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주로 가슴, 어깨, 머리, 손목을 이용해 모든 안무를 소화한다. 다리는 반쯤 안거나 교차해서 오로지 지탱하는 역할하며, 팔을 들고 어깨를 흔드는 것이 춤 동작의 특징이다.\n\n비옐기는 단지 몸짓 뿐 아니라 재치, 감정, 표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판토마임의 형식을 가미한 공연이다. 숙달하는데 특별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비옐기를 출 때는 그 사람의 영혼도 노래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몽골 사람들에게 이 춤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몽골 사회에서 비옐기는 단순한 춤을 넘어 몽골 유목민의 관습과 삶을 반영한 문화인류학적 자산이자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를 이어주는 구심이다.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소수 민족인 바야드(Bayads)족 사람들은 비옐기 춤을 추며 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n\n한 때 비옐기 춤은 전수자와 공동체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를 겪었으나 2009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된 후 유네스코 아태무형센터와 몽골 정부의 문화유산보호 노력으로 수련생과 전수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후구수 전통 민속 예술 앙상블(Khugusuu Ensemble of Traditional Folk Arts)이 몇 개월간 몽골의 21개 도(아이막)에 있는 5천여 명의 무용수들에게 비옐기를 훈련시킨 뒤 2013년 7월 10일 동시에 공연하여 세계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n\n출연자: 몽골국가가무예술원\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
매춤
매 춤은 창공을 가르는 하얀 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몽골의 민속 무용이다. 무용수들은 한 쪽 다리를 든 채, 양 팔을 펄럭이며 매의 날개 짓을 모방하는 동작을 구사하거나 역동적인 음악에 맞춰 절도 넘치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양팔을 들어 어깨를 들썩이는 기본 동작은 몽골의 민속춤인 비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n\n몽골에서 하얀 매는 몽골 제국을 건국한 징기스칸의 토템 새로 여겨진다. 매 춤은 13세기 몽골 전사들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춤으로 주요 국가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몽골의 국가적 스포츠 축제인 나담에 출전한 레슬링 선수들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몸을 풀기 위한 의식으로 매 춤을 춘다. 매 춤은 래슬링 선수들의 용기와 강인함, 품위와 무적의 투지를 상징하며, 선수의 기량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레슬링 경기가 끝나면 승자는 먹이를 정복한 매처럼 양 팔을 활짝 뻗어 다시 한 번 매 춤을 추고, 경기에 진 선수에게 승자의 팔 밑으로 지나가도록 하는 것을 전통으로 여긴다.\n\n몽골 외에 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에게서도 유사한 매 춤을 볼 수 있다.\n\n출연자: 몽골 국가 가무 예술단\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
매춤
매 춤은 창공을 가르는 하얀 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몽골의 민속 무용이다. 무용수들은 한 쪽 다리를 든 채, 양 팔을 펄럭이며 매의 날개 짓을 모방하는 동작을 구사하거나 역동적인 음악에 맞춰 절도 넘치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양팔을 들어 어깨를 들썩이는 기본 동작은 몽골의 민속춤인 비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n\n몽골에서 하얀 매는 몽골 제국을 건국한 징기스칸의 토템 새로 여겨진다. 매 춤은 13세기 몽골 전사들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춤으로 주요 국가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몽골의 국가적 스포츠 축제인 나담에 출전한 레슬링 선수들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몸을 풀기 위한 의식으로 매 춤을 춘다. 매 춤은 래슬링 선수들의 용기와 강인함, 품위와 무적의 투지를 상징하며, 선수의 기량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레슬링 경기가 끝나면 승자는 먹이를 정복한 매처럼 양 팔을 활짝 뻗어 다시 한 번 매 춤을 추고, 경기에 진 선수에게 승자의 팔 밑으로 지나가도록 하는 것을 전통으로 여긴다.\n\n몽골 외에 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에게서도 유사한 매 춤을 볼 수 있다.\n\n출연자: 몽골 국가 가무 예술단\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
가라누힝 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가라누힝 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가라누힝(Garanuhing) 춤은 전능한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전통 행렬에서 볼 수 있다. 대체로 여성 무용수들이 추는데, 벼를 수확한 후 감사와 기쁜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순조로운 치료를 기원하는 퇴마 의식 ‘툴락발라’에서 추기도 한다. 화려하고 강렬한 의상과 분장만큼이나 크고 힘이 넘치는 춤 동작이 관객들을 압도한다.\n\n‘가라누힝’은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놋쇠로 만든 종 또는 그 종소리를 뜻한다. 약 5cm 크기의 속이 비어 있는 둥근 방울 혹은 종 모양 속에 작은 금속 물체를 채워 소리를 낸다.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무용수들이 발목이나 손목에 달아 소품으로 사용한다. 자바섬 서부 지역 원주민인 순다 족의 음악 장르인 칼리닝안을 가라누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n\n벼 수확 후 신에게 감사를 올리던 축제 혹은 퇴마의식에서 연행된 춤이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Indonesia -
가라누힝 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가라누힝 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가라누힝(Garanuhing) 춤은 전능한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전통 행렬에서 볼 수 있다. 대체로 여성 무용수들이 추는데, 벼를 수확한 후 감사와 기쁜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순조로운 치료를 기원하는 퇴마 의식 ‘툴락발라’에서 추기도 한다. 화려하고 강렬한 의상과 분장만큼이나 크고 힘이 넘치는 춤 동작이 관객들을 압도한다.\n\n‘가라누힝’은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놋쇠로 만든 종 또는 그 종소리를 뜻한다. 약 5cm 크기의 속이 비어 있는 둥근 방울 혹은 종 모양 속에 작은 금속 물체를 채워 소리를 낸다.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무용수들이 발목이나 손목에 달아 소품으로 사용한다. 자바섬 서부 지역 원주민인 순다 족의 음악 장르인 칼리닝안을 가라누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n\n벼 수확 후 신에게 감사를 올리던 축제 혹은 퇴마의식에서 연행된 춤이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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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팡 춤
글리팡 춤은 서 자바섬 프로볼링고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춤이자, 이 곳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춤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글리팡 춤을 처음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프로볼링고 지역의 펜딜(Pendil) 마을에 살던 세노 트루노(Seno Truno)라는 젊은 이민자였다. 네덜란드 기업이 지배하던 사탕수수 농장의 벌목 감독관이었던 그는 어느 날 회사의 독단적인 행태에 맞서 공장을 그만둔 뒤 식민지 기업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글리팡 춤을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 춤을 소개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대부분 무슬림이었던 프로볼링고 사람들은 가믈란(Gamelan, 발리섬과 자바섬의 전통 악단) 음악을 금기시 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탓에 이 춤을 기피했다. 이후 이슬람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글리팡은 곧 널리 퍼져나가 전통춤으로 자리 잡았다.\n\n글리팡 춤은 이슬람 춤과 자바섬의 춤 문화가 융합된 형태로, 춤 이름인 글리팡은 ‘습관’을 뜻하는 이슬람어 ‘Gholiban’에서 유래했다. 이름처럼 춤 속에는 프로볼링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녹아있다. 특히 전통 무술인 실랏(Silat)에서 따온 단순하면서도 재미난 표현들은 춤동작을 더욱 풍성하고 생기 넘치게 만든다. 무용수들은 리듬감을 더하기 위해 소품을 사용한다. 왼손에는 속에 콩을 넣어 소리를 내는 도구를 흔들고, 오른 손에는 대나무 막대기를 든다. 발은 구르거나 리듬에 맞춰 앞뒤로 움직인다. 발과 손동작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춤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배가 시킨다.\n\n글리팡 춤은 여성 무용수들 혹은 남성 무용수들이 추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춤을 시작할 때 추는 전사 춤(Dance Worrior) 혹은 키프라 춤(Dance Kiprah)으로, 식민지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다. 두 번째는 파파칸 댄스(Papakan Dance)로, 남자 무용수들 혹은 여자 무용수들이 자바섬의 전설인 다마르울란(Dhamarwulan)에 나오는 사랑의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남자 무용수들이 마자파힛 왕조(Majapahit Empire, 약 1293-1500년 사이에 서 자바섬에 존재했던 왕조)의 전사들을 묘사하는 춤을 춘다.\n\n글리팡 춤의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춤동작은 흥겨운 음악과 잘 어우러진다. 음악 연주는 전통악기 켓티풍 베사르(Ketipung Besar, 작은 전통 드럼), 제드호르(Jedhor, 전통 큰 북), 켁렉(Kecrek, 사각의 나무틀에 매달린 작은 금속을 쳐서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타악기)그리고 테르반간(Terbangan, 납작하게 생긴 이슬람 전통 북)으로 구성하며, 여기에 아야와로(Ayawaro)라고 불리는 형태의 노래가 더해진다.\n\n글리팡 춤은 원래 프로볼링고 지방에서 유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중요한 손님을 위한 환영식이나 추수절, 문화축제와 같은 특별하고 경사스러운 행사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춤이 되었다.\n\n이슬람과 자바섬의 춤 문화가 융합된 형태로 환영의식이나 국가적 경사에 추는 춤이다.\n\n공연자: 자카르타 주립대학교 무용단\n예술감독: 엘린드라 예티
Indonesia -
람파이 아체
람파이 아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 아체 주에 거주하는 가요(Gayo)족 주민들의 전통 공연예술인 사만(Saman) 춤을 재구성한 춤이다. 사만 춤은 홀수 인원의 소년과 청년들이 일렬로 무릎을 꿇은 채 동일한 동작을 구사하는 군무이다. 무용수들은 복잡한 장단 변화에 맞춰 손뼉을 치고 손바닥으로 가슴과 허벅지, 바닥을 때리거나 손가락을 맞튕기고, 손짓을 하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비튼다. 홀수 차례 무용수들은 종종 짝수 차례 무용수와 반대로 동작을 취한다.\n\n13세기부터 시작된 사만 춤은 주로 쌀 곳간인 마나흐(Manah)와 부족의 합숙소인 메르사흐(Mersah) 또는 논두렁이나 강둑, 물소의 등 위에서 추었다. 춤 동작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물소가 목욕하는 모습, 논 갈기 등 자연환경과 가요족의 일상을 상징한다. 선도자이자 스승인 페낭캇(Penankat)이 시구 영창을 이끌고, 이어 드럼 연주와 라바나 소리, 그리고 역동적인 박수가 더해진다. 시구 영창에서는 전통과 개발, 종교, 영웅이야기, 일상의 교훈, 애정담 등을 풍자와 재담을 가미해 전달한다. 선도자인 페낭캇은 모든 시구와 동작을 숙달해야함은 물론 지혜와 감수성, 통솔력을 갖추어야 한다.\n\n사만 춤의 가장 독특한 점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공간적인 면에서 표현되는 일사분란함에 있다. 인내, 협동, 상부상조와 같은 가치들을 상징하는 사만 춤은 주로 열 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함께 추는데, 이를 위해 숙련도, 체력, 순발력 외에도 상호 존중 의식과 협동심이 필수적이다. 공동체의 모든 계층이 즐기는 사만 춤은 독립기념일과 같은 국가적, 종교적 경축일과 귀빈 환영식, 결혼식 등에서 추거나 아이들이 놀이삼아 추었다. 또한 사만 춤 경연대회를 열어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고, TV와 인터넷 게임의 보급으로 어린 아이들이 사만 춤을 멀리하면서, 노령에 이른 페낭캇들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만 춤은 2011년 긴급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n\n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된 '사만춤'을 재구성한 것이다. \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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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파이 아체
람파이 아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 아체 주에 거주하는 가요(Gayo)족 주민들의 전통 공연예술인 사만(Saman) 춤을 재구성한 춤이다. 사만 춤은 홀수 인원의 소년과 청년들이 일렬로 무릎을 꿇은 채 동일한 동작을 구사하는 군무이다. 무용수들은 복잡한 장단 변화에 맞춰 손뼉을 치고 손바닥으로 가슴과 허벅지, 바닥을 때리거나 손가락을 맞튕기고, 손짓을 하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비튼다. 홀수 차례 무용수들은 종종 짝수 차례 무용수와 반대로 동작을 취한다.\n\n13세기부터 시작된 사만 춤은 주로 쌀 곳간인 마나흐(Manah)와 부족의 합숙소인 메르사흐(Mersah) 또는 논두렁이나 강둑, 물소의 등 위에서 추었다. 춤 동작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물소가 목욕하는 모습, 논 갈기 등 자연환경과 가요족의 일상을 상징한다. 선도자이자 스승인 페낭캇(Penankat)이 시구 영창을 이끌고, 이어 드럼 연주와 라바나 소리, 그리고 역동적인 박수가 더해진다. 시구 영창에서는 전통과 개발, 종교, 영웅이야기, 일상의 교훈, 애정담 등을 풍자와 재담을 가미해 전달한다. 선도자인 페낭캇은 모든 시구와 동작을 숙달해야함은 물론 지혜와 감수성, 통솔력을 갖추어야 한다.\n\n사만 춤의 가장 독특한 점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공간적인 면에서 표현되는 일사분란함에 있다. 인내, 협동, 상부상조와 같은 가치들을 상징하는 사만 춤은 주로 열 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함께 추는데, 이를 위해 숙련도, 체력, 순발력 외에도 상호 존중 의식과 협동심이 필수적이다. 공동체의 모든 계층이 즐기는 사만 춤은 독립기념일과 같은 국가적, 종교적 경축일과 귀빈 환영식, 결혼식 등에서 추거나 아이들이 놀이삼아 추었다. 또한 사만 춤 경연대회를 열어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고, TV와 인터넷 게임의 보급으로 어린 아이들이 사만 춤을 멀리하면서, 노령에 이른 페낭캇들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만 춤은 2011년 긴급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n\n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된 '사만춤'을 재구성한 것이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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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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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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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니스 댄스 “태양의 신”
이 작품은 발리 전통 춤을 바탕으로 삶의 철학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창작 무용이다. 발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춤은 발리 달력에 따라 주기적으로 연행하는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발리의 전통춤은 전통과 풍습 그리고 종교적 가치를 상징한다. 발리 사람들은 전통 춤의 율동이 자연을 대변하며, 무드라(Mudra, 손동작)는 일상생활, 법령, 믿음, 풍습과도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n\n발리 춤은 먼저 성스러운 춤 ‘왈리’(Wali, 8~14 세기에 기원), 약간 성스러운 춤 ‘베발리’(Bebali, 14~19세기에 기원), 그리고 오락을 위한 춤 ‘발리-발리안’(Balih-balihan, 19세기~현재에 기원)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는 장소(desa), 시간(kala), 경우(patra)에 따라 나눈 것으로 세 가지 춤 안에는 또 다른 다양한 형태의 춤들이 있으며, 발리 전역에서 널리 연행되고 있다.\n\n발리 전통춤은 남성과 여성 모두 출 수 있다. 무용수들은 강하고 세련된 남성 역할, 여성 역할, 혼합된 역할 등 다양한 인물을 표현한다. 동식물 문양을 금박으로 입힌 화려한 색상에 황금 잎사귀와 보석 박힌 장신구가 달린 호화로운 전통 의상을 입는다. 춤 동작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다. 무릎을 바깥 방향으로 굽히고 배는 안쪽으로 넣는 자세인 ‘아젬(agem)’이 기본 동작이며, 서로 다른 박자와 방향으로 이행하는 동작인 ‘탄당(tandang)’,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전이하는 동작인 탕키스(tangkis), 그리고 행복·슬픔·분노·두려움·사랑 등을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앙켑(angkep)’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이 모든 동작에는 ‘가믈란(Gamelan, 타악기 위주의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의 음악 반주가 따른다. 무용수들은 종교적인 가르침에서 비롯한 도덕적 교훈을 담은 교향시 반주에 따라 춤을 춘다. 발리 춤의 무용수는 능숙한 기량 외에도 내면의 아름다움(탁수, Taksu), 카리스마와 겸손, 절제를 갖춰야 하며, 춤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특별한 영적인 힘 또한 필요하다.\n\n발리의 여러 공동체에서 추는 춤은 주로 전통 집단인 세카(sekaa)에 속한 연장자가 어린이에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전승한다. 최근에는 각 급 학교에서도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서 전승하고 있다. 발리 전통춤은 발리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가 녹아있는 문화유산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세 가지 장르의 발리 전통 춤은 2015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 되었다.\n\n출연자: 자카르타 주립대학교 무용단\n예술감독: 이다 바구스 케투 수디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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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니스 댄스 “태양의 신”
이 작품은 발리 전통 춤을 바탕으로 삶의 철학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창작 무용이다. 발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춤은 발리 달력에 따라 주기적으로 연행하는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발리의 전통춤은 전통과 풍습 그리고 종교적 가치를 상징한다. 발리 사람들은 전통 춤의 율동이 자연을 대변하며, 무드라(Mudra, 손동작)는 일상생활, 법령, 믿음, 풍습과도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n\n발리 춤은 먼저 성스러운 춤 ‘왈리’(Wali, 8~14 세기에 기원), 약간 성스러운 춤 ‘베발리’(Bebali, 14~19세기에 기원), 그리고 오락을 위한 춤 ‘발리-발리안’(Balih-balihan, 19세기~현재에 기원)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는 장소(desa), 시간(kala), 경우(patra)에 따라 나눈 것으로 세 가지 춤 안에는 또 다른 다양한 형태의 춤들이 있으며, 발리 전역에서 널리 연행되고 있다.\n\n발리 전통춤은 남성과 여성 모두 출 수 있다. 무용수들은 강하고 세련된 남성 역할, 여성 역할, 혼합된 역할 등 다양한 인물을 표현한다. 동식물 문양을 금박으로 입힌 화려한 색상에 황금 잎사귀와 보석 박힌 장신구가 달린 호화로운 전통 의상을 입는다. 춤 동작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다. 무릎을 바깥 방향으로 굽히고 배는 안쪽으로 넣는 자세인 ‘아젬(agem)’이 기본 동작이며, 서로 다른 박자와 방향으로 이행하는 동작인 ‘탄당(tandang)’,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전이하는 동작인 탕키스(tangkis), 그리고 행복·슬픔·분노·두려움·사랑 등을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앙켑(angkep)’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이 모든 동작에는 ‘가믈란(Gamelan, 타악기 위주의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의 음악 반주가 따른다. 무용수들은 종교적인 가르침에서 비롯한 도덕적 교훈을 담은 교향시 반주에 따라 춤을 춘다. 발리 춤의 무용수는 능숙한 기량 외에도 내면의 아름다움(탁수, Taksu), 카리스마와 겸손, 절제를 갖춰야 하며, 춤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특별한 영적인 힘 또한 필요하다.\n\n발리의 여러 공동체에서 추는 춤은 주로 전통 집단인 세카(sekaa)에 속한 연장자가 어린이에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전승한다. 최근에는 각 급 학교에서도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서 전승하고 있다. 발리 전통춤은 발리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가 녹아있는 문화유산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세 가지 장르의 발리 전통 춤은 2015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 되었다.\n\n출연자: 자카르타 주립대학교 무용단\n예술감독: 이다 바구스 케투 수디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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