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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공연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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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 판지 토팽
토펭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이다. 토펭(Topeng)'은 인도네시아어로 ‘나무 가면’을 뜻하는 말로, 어원인 'tapel'은 '억누르다' 혹은 '얼굴을 눌러서 덮은 것' 또는 '나무의 뿌리'를 의미한다.\n\n‘판지 토펭’은 토펭 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바 섬에서 전승되어온 ‘판지(Panji)’ 연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판지 토펭은 12세기 경 카드리 왕국(Kadri, 혹은 Kediri Kingdom)의 왕자였던 판지가 결혼식 전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신부 키라나 공주를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판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동남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특히 서 자바섬의 사이어본(Cirebon)과 동 자바섬의 마랑(Malang) 지역에서 연행하는 토펭 춤을 비롯한 여러 인도네시아 전통 춤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n\n인도네시아의 토펭 춤은 동 자바섬의 마랑, 발리,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마두라 섬, 자바 북쪽 해안의 치레본 등 다섯 개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오늘날의 토펭 춤은 15세기 자바섬과 발리 섬에 일반적으로 남아있던 토펭 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 무용극은 힌두교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칼리만탄 섬의 토착 부족인 다약족은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추는 후독(Hudoq) 춤에서 보듯 자연의 힘과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토펭 춤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추고 있다. 힌두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hbarata) 같은 서사시들이 토펭 무용극의 주제가 되었다.\n\n판지 토펭 춤은 흰색 가면을 쓴 무용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마치 걸어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은 판지 토펭의 정수로 꼽힌다. 무용수는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에 대한 우화, 영웅담, 신화들을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토펭 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세기 힌두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의 왕인 ‘하얌 우르크(Hayam Wuruk, 1334~1389)’를 노래한 서사시 ‘나가라크레타가마(Nāgarakrĕtāga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자 왕국을 순행(巡幸)하던 중 왕이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황금빛 가면을 쓰고 토펭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1365년에 기록된 ‘나가라크레타가마’의 필사본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n\n출연자: 다디조노 달마완(Dadijono Darmawan)\n예술감독: 다디조노 달마완\n안무가: 다디조노 달마완
Indonesia Nov 26, 2010 -
우즈벡의 멜로디 ‘마콤’
전통 기악-성악 연주 ‘마콤 예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n마콤(Maqom)은 여러 성부로 구성되는 복잡한 작곡이며 몇 가지 특정규칙을 엄격히 고수한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들과 크게 구별된다. 우즈베키스탄 영토 내에서 형성된 마콤은 악기 연주 부분인 마쉬킬로트(Mushkilot)와 성악 부분인 나스르(Nasr)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마콤은 부하라 토후국의 주도인 부하라(Bukhara), 호레즘 칸국(Khorezm Khanet)의 주도인 히바(Khiva), 코칸드 칸국의 주도인 코칸드(Kokand) 등 세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n\n그 결과 세 가지 유형의 마콤이 형성되었다. 부하라에서는 여섯 개의 마콤이 포함된 ‘샤쉬마콤(Shashmaqom)’이, 호레즘에서는 여섯 개 반의 마콤이 포함된 '호레즘 마콤(Khorezm maqoms)’이 생겼고, 코칸드에서는 네 개의 마콤을 포함한 ‘페르가나-타슈켄트 마콤 사이클(Ferghana–Tashkent maqomcy\u0002cle)’이 궁정의 음악전문가들에 의해 편집되었다. \n\n이 영상에서는 역량 있는 연주자들과 가수들이 세 가지 마콤 사이클을 모두 연주하는 공연 장면과 더불어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음악교육기관 재학생들의 연주도 보여준다.\n\n녹음은 타슈켄트시, 페르가나, 호레즘, 부하라 지역에서 각기 진행되었으며, 마콤 연구자들과 이 분야에서 후진을 양성해온 장인들과의 인터뷰로 내용이 한층 더 풍부해졌다.
Uzbekistan 2017 -
페르가나 계곡의 무형유산: 구전전통 및 표현
페르가나 계곡의 무형유산: 구전전통 및 표현\n\n구전전통 및 표현의 영역은 민간 구비 창작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구전口傳되어 오고 있는 신화, 전설, 장편서사시, 동화, 설화, 우화, 속담, 격언, 알라, 빨리 말하기, 그리고 라파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연행演行 방식, 다양한 선율 등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데, 가령 장편서사시는 돔브라, 코브즈, 두토르(혹은 두타르) 반주와 함께, 또는 이야기나 즉흥시를 창작하는 방식으로 연행된다. 교육적인 성격을 띠는 동화, 설화, 우화, 속담 및 격언 역시 구전되어 내려온 것으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반영하고, 근면, 정직 같은 인간적 덕목들을 찬양하는 교훈적 장르이다. 라파르(lapar)는 민요가 춤을 매개로 연행되는 것이고, 얄라(yalla)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다른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이다. 반면, 할파(xalfa)는 아코디언 반주로 사람들에게 문화적 즐거움을 선사하며 즉흥 연주를 특징으로 하는 창작 예술이다. 얄라와 라파르는 타슈켄트-페르가나 지역에, 마브리기혼릭(mavrigixonlik)은 부하라 지역에 고유한 양식이며, 할파는 호레즘 지역에서 발달하였다.\n\n1. 얄라 (Yalla)\n얄라(Yalla)는 우즈벡 민간 창작 작품 속에 널리 퍼져 있는데, 민중의 말, 고전 및 현대시를 기반으로 춤과 함께 연행되는 노래 장르이다. 얄라는 혼자서, 혹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연행자들이 도이라(doira)나 기악 앙상블의 반주와 함께 연행한다. 얄라는 대개 사랑을 주제로 하며, 매력적이면서 장난기 가득한 특성을 지닌다. 얄라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 유형은 주 소절을 주로 얄라치 단독으로 부르고, 후렴구를 집단적으로 돔브라 반주와 함께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Olmacha Anor(작은사과 석류)”, “Yallama Yorim(얄라마, 내사랑)”, “Kho-kho Yalla(호-호 얄라)”, “Qizgina(소녀)” 등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넓은 음역대와 구조적 형태로 볼 때 아슐라(ashula, 일종의 성악곡) 장르에 가깝다. “Yali-Yali(얄리-얄리)”, “Qalam Qoshligim(내사랑 검은 눈썹)”, “Jonon Bo’laman Deb(나도 매력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Ayrilmasun(헤어지지 않기를)”, “Fig’ondur(통곡)”과 같은 얄라 고전들이 민간에 널리 퍼져 있다. 나만간 주州 얄라 그룹들은 여성 얄라치들이 도이라를 반주로 하여 “Katta Yalla(대大얄라)” 및 “Kichik Yalla(소小얄라)” (선율 및 박자가 복잡하고, 완성도가 매우 높음)의 전형들을 각종 잔치, 연회에서 수행한다. 오늘날 얄라는 악극단 공연 형식으로도 연행된다. 이번 페르가나 지역 답사를 통해 많은 연행자들의 얄라를 기록하였다. 무보락혼 아크로모바(Muborakxon Akromova), 자미라혼 투로포바(Zamiraxon Turopova), 마흐무다 압두라흐모노바(Mahmuda Abdurahmonova), 나시바 보이호노바(Nasiba Boyxonova), 라일로혼 하키모바(Layloxon Hakimova), 무하람 토시테미로바(Muharram Toshtemirova) 등이 이에 포함된다.\n\n2. 알라 (Alla)\n알라(Alla) 노래는 아기를 재울 때 여성이 홀로 부르는 구비 형식 중 하나이다. 우즈벡, 위구르, 타직 민족사이에 ‘알라’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이 노래는 보통 요람을 흔드는 속도와 박자에 맞춰서 부른다. 알라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꿈과 희망, 소망을 언급하는 동시에 다양한 정신적 경험들도 표현한다. 그래서 어떤 알라는 흐느끼는 음색을 띠기도 한다. 알라는 ‘요람 의례’때 요람을 들고 오는 여자들이 부르기도 한다. 이때 연행상 특징은 잔치 분위기에 걸맞게 한껏 흥을 돋우는 타악기 도이라 반주와 함께 불린다는 점이다.\n‘알라’는 ‘하나님(알라, Alloh)’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님(창조주)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보호되기를 기원하고 간구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n\n알라는 만드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어머니 자신이다. 알라의 내용이나 선율은 바로 이러한 어머니의 심리적 상태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어머니들은 삶에 대한 애정, 행복한 인생,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새로운 내용의 알라를 부르고 있다.\n알라는 역사 속에서 편집되고 변형되었으나, 그 아름다운 형태와 소박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민간 구비 예술 창작의 표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알라를 다시 살리고, 젊은 세대에 널리 알리며, 민족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어머니가 노래할 때” 라는 전국 경연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페르가나 지역으로 파견된 답사 과정에서 무형문화유산 전승자 및 전수자들로부터 방대한 양의 알라를 수집하였다. 모타바르 잘리로바(Mo’tabar Jalilova), 마르하맛 조라예바(Marhamat Jo‘rayeva), 메흐리 압둘라 예바(Mehri Abdullayeva), 자미라 잡보로바(Zamira Jabborova), 엘미라 조니베코바(El’mira Jonibekova), 카로맛혼 마마조노바(Karomatxon Mamajonova), 나시바 소트볼디예바(Nasiba Sotvoldiyeva)가 이들에 포함된다.\n\n3. 올란 (O‘lan)\n올란(O‘lan)은 민간 구비 창작 장르로서, 주로 여성들이 도이라나 칠드르마(childirma) 연주와 함께 또는 무반주로 연행한다. 우즈벡 의례, 연회 등에서 한 쪽에는 여자들이, 반대 쪽에는 남자들이 서서 팀으로 할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대화 형식으로 부를 수도 있다. 질문-응답 식의 노래도 간혹 ‘올란’이라고 불린다. 올란에는 민중의 희망과 꿈, 슬픔과 기쁨이 표현되는데, 특히 사랑을 주제로 한 경우가 가장 많다. 모든 잔치 의례에는 각기 적합한 올란이 있다(요람 의례 올란, 결혼식 올란 등). 서정적이고 매혹적이며 후렴구가 반복되는 형태의 풍자적 올란도 널리 퍼져 있다. 올란은 “요르-요르(Yor-Yor)” 노래와 비슷하며, 어떤 올란의 경우 각 마디 끝 부분에 ‘요르-요르(yor-yor)’가 동일하게 반복된다(이 올란은 도이라나 돔브라 반주와 함께 연행된다). 오늘날 라파르와 올란을 재활성화하고, 대중에 널리 홍보할 목적으로 2년마다 한 번씩 라파르 및 올란 창작연행자들의 전국 경연 대회가 열린다. 페르가나 지역 답사 과정에서 무형문화유산 전승자 및 전수자들로부터 많은 올란들이 기록되었다. 미르자옙 하이룰로(Mirzayev Xayrullo), 미르자예바 하니파(Mirzayeva Hanifa), 라피코바 이노얏(Rafiqova Inoyat), 욜도셰바 마흐부바(Yo‘ldosheva Mahbuba), 투르구놉 바흐티요르(Turg‘unov Baxtiyor), 압두나자로바 제비혼(Abdunazarova Zebixon) 등이 그 연행자들이다.\n\n4. 요르-요르 (Yor-Yor)\n요르-요르(Yor-Yor)는 결혼식 때 부르는 민요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즈벡, 타직, 위구르 및 투르크멘 민족 사이에 널리 보급되었다. 요르-요르는 2행 혹은 4행 형태로 구성되고, 각 마디의 끝이나 간혹 중간에 “Yor-yor, Aylanaman(내사랑, 사랑스럽구나)”와 같은 말을 넣어 부른다. 보통 도이라 반주와 함께 신부를 배웅하는 여성들이 부르는데, 페르가나 지역(페르가나, 오시, 호잔드)이나 자랍샨 지역에서 (신부를 데리러-역주) 신부집으로 이동하는 남자들이 부르기도 한다. 요르-요르에는 신부의 장점, 꿈과 희망, 기원, 축복의 메시지가 담긴다. 요르-요르의 강력한 영향력은 애잔하고 구슬픈 음조와 함께, 잔치 분위기의 쾌활함이 동시적으로 표현된다는 데에 있다. 구전 요르-요르의 영향으로 문자 문학에서도 요르-요르가 만들어졌다.\n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페르가나, 나만간, 수르한다르야, 호레즘, 기타 지방들의 요르-요르는 각기 고유한 특징들로 구별된다. 선율이 구슬프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장난스러우며 매력적인 요르-요르는 다양한 민속·민족 앙상블의 상연목록이나 우즈벡 작사, 작곡가들의 창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페르가나 지역에서 수행한 답사 기간에 무형문화유산 전승자 및 전수자들로부터 방대한 양의 요르-요르를 수집, 기록하였다. 라피코바 이노얏(Rafiqova Inoyat), 다다조노바 무슬리마(Dadajonova Muslima), 압두라흐모놉 마흐뭇(Abdurahmonov Mahmud), 에르가셰바 노디라혼(Ergasheva Nodiraxon), 소티모바 마디나(Sotimova Madina) 등이 이에 포함된다.
Uzbekistan 2012-01-01 -
인도네시아- 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Indonesia Aug 27-28, 2017 -
캄보디아 - 압사라
압사라 춤은 크메르 전통무용, 크메르 황실발레 등으로도 불리며, 2008 유네스코 무형유산목록에는 ‘캄보디아 왕실무용(The Royal Ballet of Cambodia)’이라는 명칭으로 등재되었다. 압사라 춤은 앙코르 와트의 회랑 벽면에 새겨진 압사라 부조의 이미지를 따라 만들어진 춤이다. 부조 속에는 저마다 다른 표정과 동작을 하고 있는 수 천 개의 압사라들이 있는데, 이를 연속 동작으로 보면 한 편의 춤사위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압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힌두교와 불교 신화에 나오는 구름과 물의 여자 요정을 뜻하며, 흔히 ‘천상의 무희’ 혹은 ‘춤추는 여신’이라는 의미로도 알려져 있다.\n\n원래 압사라 춤은 고대 캄보디아 왕실에서만 공연되었다. 무용수들은 신과 조상에게 파견된 왕의 전령으로 여겨졌고, 천상의 존재를 표현하는 신성한 임무를 지닌 존재였던 무용수들은 결혼이 금지된 채 왕궁에서만 살아야 했다.\n\n압사라 춤은 황금빛의 신비로운 의상과 정교한 분장, 그리고 우아하며 느린 동작이 특징이다. 특히 손동작은 앙코르와트 부조 벽화 속 압사라 무희들의 손 모양과 일치하는데, 섬세하고 화려한 손동작 하나하나에는 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담겨 있다. 무용수들은 유려한 몸짓과 자세를 통해 공포와 분노, 사랑과 환멸에 이르는 폭넓은 감정을 표현한다. 압사라 춤의 손동작은 습득하기 어려워 수 년 간 고된 훈련을 통해 숙련된 무용수들만이 소화할 수 있다.\n\n전통적으로 압사라 춤에는 네앙(Neang, 여성), 네아이롱(Neayrong, 남성), 예악(Yeak, rjdls), 스바(Sva, 원숭이)의 네 가지 인물 유형이 등장한다. 각 등장 인믈은 고유한 색상과 분장, 가면으로 구분한다. 음악은 전통 악단과 여성 합창단이 이끈다.\n\n압사라 춤은 1천 년 이상 크메르 왕실의 대관식, 혼례식, 장례식, 경축일 등 각종 행사와 의식에서 널리 연행되었다. 크메르 민족의 기원과 전설을 춤으로 재연하는 압사라 춤은 캄보디아 인들에게 문화의 상징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존중 받았다. 하지만 1960년 대 이후 크메르 루즈의 폭정 하에 거의 모든 명인급 무용수들과 악사들이 희생되면서 사실상 명맥이 끊어졌다가 1979년 폴 포트 정권이 붕괴한 직후 극적으로 부활했다. 현재는 과거의 영화를 많이 회복하였으나 공적인 지원 부족, 공연 공간 확보의 어려움, 대중문화와의 경쟁, 관광상품으로 전락하는 위기를 겪는 등 많은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n\n출연자: 류 시브멩(Leu Sivmeng), 렝 스레이펜(leng Sreypenh), 피치 락스메이(Pich Raksmey)\n예술감독: 욘 소콘(Yon Sokhorn)
Cambodia Sep 2, 2015 -
중국 - 춘우
춘우는 장족 고유의 춤이자 중국 고전무용을 대표하는 수수무 형식을 바탕으로, 봄날에 내리는 우아한 비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춤으로 표현한 창작무이다. 수수무는 긴 소매 옷을 입고 추는 '장삼무'의 일종이다. 수수무의 '수수'는 긴 소매가 뿌려지는 모습이 마치 물을 뿌리는 듯하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빈손으로 추었으나 점점 수수의 길이를 부각시켜 오늘날의 긴 소매 형태로 발전했다. 무용수들이 연습을 할 때에는 주로 흰색 수수를 입으며, 공연을 할 때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색깔과 형태로 수수에 변화를 준다.\n\n수수무 동작은 수수를 뿌리거나, 뿌린 수수를 다시 잡거나, 또는 잡은 수수를 다시 뿌리는 등의 춤사위가 특징이다. 수수를 휘두를 때의 원칙은 ‘곡중구원(曲中求圓)’ 즉 원만한 곡선이다. 수수가 뿌려질 때의 자태는 알파벳 ‘S’ 자를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삼는다. 원만함과 곡선미는 수수무의 심미적인 특징을 대변하는 말인 동시에 극단에 치닫지 않고 조화로움을 강조하며 화평, 공존, 화합을 추구하는 장족 특유의 철학 및 기질과도 일맥상통한다.\n\n수수무는 불교 제사에서 유래했다. 장족의 티벳 불교는 인도의 밀교, 중원의 대승불교, 티벳 지역 토착 종교인 분교(笨教)가 융합된 독특한 종교이다. 초창기 인도 불교 계승자들은 의식 무용을 처음으로 티벳 지역에 전파한 이후 불교의 교의를 선전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무용을 활용했다. 이후 분교의 무당춤이 흡수되어 수수무의 원형인 ‘강모(羌姆)’가 만들어졌다. 티벳 불교의 대표적인 무용인 강모는 장엄함, 엄숙함, 경건함, 기괴함을 특징으로 하는 제사의 악무 공연으로 한국의 ‘굿’과 같은 개념이다.\n\n본래 제사 의식에 사용되었던 수수무는 인도 불교 무용, 중국 당조의 궁중 악무와 전통을 결합하고, 서역 각 민족의 춤사위를 참고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티벳 불교를 믿는 정교합일 사회에서, 종교는 티벳 사람들의 의식과 일상을 지배했고 불교 의식 춤이었던 수수무는 자연스레 민간으로 전파되어 장족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민속 무용의 전형이 되었다. 수수무는 지역에 따라 현자춤, 궈장춤 등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형태로 전승되고 있는데, 1950년대 이전까지 티벳 사회가 봉쇄되어 있었던 덕분에 비교적 원형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후 1978년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이후 ‘민족종교신앙자유 정책’을 실행하면서 수수무의 예술적 가치가 새삼 주목을 받았다. ‘신중국’ 설립 후 북경 등 대도시로부터 초청을 받은 수수무 전승자들이 각지로 진출해 춤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수수무는 중국 민중 모두가 즐기는 전통춤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n\n티벳 불교의 제사용 의식무인 수수무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매가 긴 상의(수수)를 힘차게 뿌리는 듯한 동작이 특징인 춤이다.\n\n출연자: 중국 성도체육대학교 예술학과\n예술감독: 로봉
China Oct 3, 2013 -
뉴질랜드 - 하카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춤인 ‘하카(Haka)'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n\n하카는 고대 마오리 전사들이 부족 간에 전쟁을 시작하기 전, 자기 자신을 가다듬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적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 행했던 일종의 의식이다. 무용으로서의 심미적인 춤 동작보다는 상징적인 포즈와 얼굴 표정, 구호를 통해 메시지를 표현한다. 전통 의상인 피우피우(Piupiu)를 입은 마오리 전사들은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어 위협적인 얼굴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손바닥으로 몸을 때리며 절도 넘치는 팔 동작과 함께 발을 구르고 큰 소리로 포효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때 손, 팔, 다리, 발, 눈빛, 혀, 목소리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을 동원해 용기와 분노, 혹은 기쁨 등 상황에 맞추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n\n각 부족(iwi)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하카가 전해지고 있다. 페루페루(Peruperu)는 가장 사나운 형태로, 전쟁을 하기 전에 무기를 들고 춘다. 가장 잘 알려진 ‘카 마테’(Ka Mate)는 무기 없이 추는 타파라히(Taparahi)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죽음에 맞선 삶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포휘리(Pōwhiri)는 환영 의식용으로 만들어진 하카로 주로 남성이 춘다. 일반적으로 하카는 각 부족의 상황에 맞추어 남성뿐 아니라 다양한 성별로 팀을 구성할 수 있다.\n\n오늘날 뉴질랜드에서는 국빈 방문 시 외국 정상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 하카를 공연한다. 뉴질랜드의 국가대표 럭비 팀인 올 블랙(All Blacks)이 국가 대항 경기 전에 상대 팀 앞에서 하카를 추는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1905년 영국 원정 경기에서 뉴질랜드 럭비 국가대표팀이 첫 선을 보인 후에 생긴 전통으로,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과 함께 전술 훈련뿐 아니라 하카 연습을 병행한다. 오랫동안 럭비 대표팀의 마오리족 출신 선수가 하카 의식을 이끌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마오리족 출신이 아닌 선수들도 할 수 있다.\n\n마오리 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키우기 위해 하카를 배운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많은 학교에서도 하카를 정식으로 가르친다. 뉴질랜드 인들은 다양한 행사는 물론 결혼식, 생일파티, 장례식 등 많은 행사에서 하카를 공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하카는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와 상황에 걸맞게 조금씩 변용되며 과거의 전통을 넘어 현대의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문화코드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n\n출연자: 아타미라 댄스 컴퍼니(Atamira Dance Company)\n예술감독: 모스 패터슨(Moss Patterson)\n안무가: 모스 패터슨(Moss Patterson)
New Zealand Aug 27, 2017 -
부탄 - 파참 '영웅들의 춤'
이 작품은 불교 왕국인 부탄의 전통 탈춤인 챰(Cham 혹은 Chham) 중에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하는 '북춤'과 평화와 분노의 신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영웅의 춤'을 독무로 재구성한 춤이다.\n\n히말라야 산맥 남쪽 언덕의 작은 왕국 부탄에서 불교는 종교를 넘어 삶의 방식과 문화전반을 지배하는 철학 그 자체이다. 부탄의 유구한 불교 유산 중에서도 챰은 부탄 문화의 가장 독특한 유산으로 꼽힌다. 제사에서 추는 탈춤(가면춤)을 뜻하는 ‘챰’은 주로 지역 사원들의 연례 축제에서 연행한다. 승려와 일반인 모두 출 수 있지만 승려의 경우 종교적 축제 기간 동안에만 참여한다. 15세기 중반까지 부탄 왕국은 위대한 선도자인 피마 링파(Pema Limgpa)와 함께 챰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그는 축제의식 전후 막간에 공연하는 챰 공연을 만들었는데, 이 춤들은 극락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신성한 수행자들과 천상의 존재들을 묘사한다. 챰에는 종교에 대한 지극한 헌신과 열정, 관용, 조화로운 삶에 관한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부탄 사람들의 종교와 삶에 있어서 챰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챰을 보는 행위를 세속적인 애착으로부터 해방되는 영적인 경험으로 여기며, 신앙심과 고결한 삶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는다.\n\n챰 무용수들은 양단으로 만든 값비싼 전통 의상을 입는다. 상의를 비롯해 비단을 치마처럼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은 하의의 화려한 색감에는 고도의 상징이 숨어 있다. 붉은 색은 불과 에너지, 힘을 나타내며, 흰색은 물과 평화, 노란색은 땅과 성장, 상승을 의미한다. 초록색은 공기와 유한함을, 파란색은 우주와 무한함을, 마지막으로 검정은 분노를 상징한다. 이 여섯 가지 색깔은 전통 의상을 비롯해 국기, 장식품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춤 출 때 쓰는 탈(가면)은 성인이나 현자, 수호신, 전설 속의 인물을 나무에 조각해서 만드는데,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한다. 음악으로 심벌즈, 북, 크고 작은 동으로 만든 나팔과 고동 나팔, 종을 연주한다.\n\n부탄의 제의용 탈춤인 참(Cham혹은 Chham)의 한 대목을 무대화한 작품이다.\n\n출연자: 치어링 도지\n예술감독: 치어링 도지
Bhutan Oct 3, 2013 -
인도 - 타란감 쿠치푸디
전통적으로 쿠치푸디는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위해 힌두 사원 안이나 옆에서 불을 피워둔 채 밤에 공연했다. 쿠치푸디 춤은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우며 신에게 기도하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무용수는 전통 악기인 므리단감(Mridangam, 원통형 타악기), 비나(Veena, 아치형 하프), 탐부라(Tambura, 단조로운 저음 연주를 위한 현악기)와 심벌즈, 플릇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쿠치푸디는 리듬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는 발놀림과 조각 같은 몸의 움직임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브라민(Brahmin, 사제)들만 추었던 춤으로, 고대 인도 전역의 힌두 사원을 옮겨 다니던 방랑 사제의 종교 춤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의 역할까지 소화했지만 지금은 주로 여성 무용수들이 춘다.\n\n타란감은 쿠치푸디 무용극 중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로, 고도로 숙련된 기예를 보여준다. 무용수의 곡예와 같은 춤 동작에는 철학적인 중요한 상징이 숨어있다.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무용수들이 물뿌리개에 집중하듯, 관객들은 각자 짊어지고 있는 세속의 짐을 잠시 잊고, 적어도 춤을 보는 순간만큼은 신의 신성한 발걸음을 생각한다. 물뿌리개와 접시는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인 비유이다. 발아래 놓인 동으로 만든 접시는 ‘우리 모두 땅에 발을 딛고 있음’을 비유한다. 그리고 물뿌리개는 저마다 머리에 이고 있지만 결코 떨어뜨리거나 엎질러서는 안 되는 삶의 무거운 책임을 상징한다. 타란감 쿠치푸디에서 무용수들은 이러한 주제를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기쁨에 찬 춤 동작으로 보여준다. 춤을 통해 신에 대한 사랑과 은총, 에너지, 그리고 언제나 좋은 생각으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n\n쿠치푸디 춤의 뿌리는 고대 힌두 산스크리트 경전 나트야 샤스트라(Natya Shastra)이다. 경전과 신화 속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특정한 캐릭터를 묘사하며, 경전에 따라 춤의 레퍼토리는 느르타(Nritta), 느리트야(Nritya), 나트야(Ntaya)의 세 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바라타나티얌이 힌두 사원의 전통춤으로서 기하학적인 완벽성을 추구하는데 비해, 쿠치푸디는 감각적이며 유연하고 민속적인 힌두교 축제의 전통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인도 전통춤과 마찬가지로 쿠치푸디 역시 이야기가 있는 춤극이지만 특별히 춤과 노래로 형식이 정형화 되어 있어서 무용수들에게는 두 가지 재능이 모두 필요하다.\n\n쿠치푸디라는 이름은 인도 남부 안다라 프라데쉬 지방의 '쿠첼라푸람(Kuchelapuram)'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기록은 10세기 기록물인 마추팔리 카이팟 (Machupalli Kaifat)의 동판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공연하는 쿠치푸디 춤 양식은 17세기에 완성되었다. 쿠치푸디는 중세(15~16세기)까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무슬림의 침략으로 쇠퇴했다가 17세기 초 무굴 제국이 무너지면서 잠시 인도 전역에 퍼져 나갔다. 유럽 식민지 시대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힌두교를 비롯한 인도의 전통 종교와 문화가 금기시되면서 매춘부가 추는 저급한 춤으로 격하되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인도의 전통춤을 복원하려는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부활했다. 쿠치푸디는 인도 정부에서 인정한 8대 전통춤 가운데 하나이다.\n\n인도 정부가 인정한 8대 전통춤이다.\n\n출연자: 아난다 샹카 야안트\n예술감독: 샹쥬타 신하\n
India Sep 2, 2015 -
조론조로
조론조로는 느긋하게 걸어가는 말 위에서 여러 커플이 춤 추는 모습을 묘사한다. 조론조로 춤은 몽고 서부에서 유래한 민속 무용인 비이 비옐기(Bii Biyelgee)에서 유래했다. 말과 관련된 비옐기인 조루 모리(Jooroo Mori, 느리게 걷는 말), 조논 하르(Jonon Khar-Noble Black), 잘람하르(Jalam Khar, 검은 말), 모리니 야브달(Moriny Yavdal, 말의 걸음걸이)은 고대로부터 오이라트족(Oirat)에게 전해져 내려와 지금도 널리 퍼져있다.\n\n비이 비옐기는 몽골 민속 무용의 뿌리로, 유목 생활에서 비롯된 춤이다. 몽골의 여러 민족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옐기 춤을 전승해왔다. 저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비옐기 춤을 추며, 그 이름도 모두 다르다. 말 젖(우유)을 뿌리는 동작이 특징적인 차잘(Tsatsal) 비옐기, 세수나 머리 빗기, 직물 짜기, 활쏘기 같은 일상의 동작을 묘사한 운드센(Undsen) 비옐기, 말을 타고 느리게 걷는 동작을 표현하는 조루 모리(Joroo Mori) 비옐기, 머리나 손 위에 우유를 담은 컵을 올려 놓고 춤을 추는 컵(Jamal Khar) 비옐기, 예술성과 심미성에 중점을 둔 우브르무츠(Uvurmuts) 비옐기, 이 밖에 노래를 곁들이는 비옐기도 있다. 몽골 밖에서는 러시아의 '카드릴', 우크라이나의 '고파크', 조지아의 '리제켄카' 춤이 비옐기 계열에 속한다.\n\n전통적으로 비옐기의 무대는 게르 안에 있는 난로 주변의 좁은 공간이었다. 실내에서 관객에게 먼지나 오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주로 가슴, 어깨, 머리, 손목을 이용해 모든 안무를 소화한다. 다리는 반쯤 안거나 교차해서 오로지 지탱하는 역할하며, 팔을 들고 어깨를 흔드는 것이 춤 동작의 특징이다.\n\n비옐기는 단지 몸짓 뿐 아니라 재치, 감정, 표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판토마임의 형식을 가미한 공연이다. 숙달하는데 특별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비옐기를 출 때는 그 사람의 영혼도 노래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몽골 사람들에게 이 춤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몽골 사회에서 비옐기는 단순한 춤을 넘어 몽골 유목민의 관습과 삶을 반영한 문화인류학적 자산이자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를 이어주는 구심이다.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소수 민족인 바야드(Bayads)족 사람들은 비옐기 춤을 추며 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n\n한 때 비옐기 춤은 전수자와 공동체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를 겪었으나 2009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된 후 유네스코 아태무형센터와 몽골 정부의 문화유산보호 노력으로 수련생과 전수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후구수 전통 민속 예술 앙상블(Khugusuu Ensemble of Traditional Folk Arts)이 몇 개월간 몽골의 21개 도(아이막)에 있는 5천여 명의 무용수들에게 비옐기를 훈련시킨 뒤 2013년 7월 10일 동시에 공연하여 세계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n\n출연자: 몽골국가가무예술원\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Sep 3, 2016 -
카타칼리-닥샤야감
카타칼리는 17세기 인도 남서부 케랄라 주에서 유래한 전통 예술로 600 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춤, 연극, 음악, 분장과 의상 등이 긴밀하게 결합된 가무악 총체극으로, 바라타나티얌과 마찬가지로 연희자가 시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읊고 춤과 연기로 표현하는 종교적인 연희 양식의 춤이다. 인도 예술에 있어 영감의 뿌리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 라마야나(Ramayana), 샤비나(Shaiva)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인도춤 미학의 핵심인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일체감, 즉 라사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카타칼리 공연은 야외 무대에서 저녁 6시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까지 밤을 새워 이어진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되는 만큼 혹독한 수련을 거친 무용수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소년과 남자들이 추었으며, 남자 무용수가 여성의 역할까지 소화했다.\n\n카타칼리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판달(Pandal) 이라고 불리는 무대는 꽃과 잎으로 장식한다. 유일한 조명은 크고 거대한 금속 램프의 불빛뿐이다. 무용수는 20kg이 넘는 원색의 전통 의상을 입고 얼굴에는 마치 가면처럼 보이는 특수한 분장을 하며, 키의 절반 길이가 넘는 큰 왕관을 쓴다. 육중한 의상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고 날렵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경탄을 자아낸다. 음악은 케랄라 주의 전통 악기인 첸다(Chenda, 원통형의 퍼쿠션)와 마탈람(Maddalam, 잭 푸르트 나무로 만든 양면 드럼) 두 타악기가 이끈다. 첸다는 높고 격렬한 음색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마탈람은 다채롭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여성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인도 4대 전통 무용 중 하나로 꼽히는 카타칼리는 천 년 전의 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무렵까지 왕실에서만 공연하는 고급 문화였으나 최근에는 일반 대중들도 즐긴다.\n\n이 작품은 카타칼리 중 닥샤 야감(Daksha Yaagam)을 모티브로 하는 공연이다. 닥샤야감은 인도 고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시바신, 사티, 사티의 아버지, 닥샤 왕에 얽힌 이야기이다. 닥샤의 딸 사티는 자신의 아버지가 신께 제사를 바치기 위해 성대하게 벌인 야감에서 남편인 시바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자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를 알게 된 시바신이 광폭한 분노에 휩싸이면서 파괴의 여신과 그 졸개가 탄생했다. 닥샤의 야감을 파괴한 후 시바신은 파괴의 춤을 추었고, 이것이 인도 춤의 모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n\n인도 정부가 인정한 8대 전통춤이다.\n\n출연자: 칼라일꿀랑카라 카타칼리재단\n안무가: P.N.Ventikattaraman
India Sep 3, 2016 -
새봄 명절 ‘나브루즈’
전통 명절 ‘나브루즈’(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n나브루즈(Navruz)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가장 크게 축하하는 명절 중 하나다. 나브루즈는 2009년 7개국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대표목록에 등재된 바 있다. 나브루즈를 기념하는 나라들 중 일부가 추가로 협약당사자가 된 점을 고려해 2016년 12개국의 공동등재로 재지정되었다.\n\n우즈베키스탄에서는 3월 21일이 나브루즈 국경일로 공표되었지만 마할라 자치주와 공화국에 속한 몇몇 지역에서는 한 달간 나브루즈를 축하한다. 영상에서는 타슈켄트의 마할라 지역의 한 곳과 페르가나 지역의 놀이공원, 문화예술연구원에서 이루어지는 나브루즈 축하행사를 보여준다. 궁중요리인 ‘나브루즈-수말락(Navruz-sumalak)’과 야채를 곁들인 파이 ‘코크 솜사(Kok somsa)’, 야채를 소로 넣은 ‘코크 추취바라(Kok chuchvara)’ 같은 봄철 요리를 해먹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n\n민속공연단, 꼭두각시 조종자, 줄타기 곡예사, ‘폴본(Polvon)’이라 불리는 씨름선수, 현대 가수들의 공연과 그 밖의 다양한 민속놀이 경연 등이 나브루즈 축하 기간에 진행된다. 나브루즈는 새해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더 가까이 결속시키고 축제의 참여자들 사이에 사랑과 애정을 전파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Uzbekistan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