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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공연예술
ICH Element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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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야류 (水營野遊)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야류(들놀음)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해지던 오광대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동래·부산진 등에 전래된 것으로, 야류란 이름은 넓은 들판같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광대가 전문연예인에 의해 행해진 도시가면극이라면 야류는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수영야류는 정월 대보름에 산신령과 샘물, 그리고 최영 장군 묘에 제사를 지낸 후 달이 뜨기를 기다려 행해진다. 약 200년전 좌수영 수사의 직책을 맡았던 관리가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패들을 불러다가 놀게 하였는데 부하들이 이를 보고 배운데서 시작된 것이라 전해진다. 놀이는 양반춤·영노춤·할미와 영감춤·사자춤의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놀이가 끝나면 가면을 한 곳에 모아 제사를 지내고 불태우면서 행운을 빈다. 등장인물은 수양반·둘째양반·셋째양반·넷째양반·종가도령·말뚝이·영노·할미·제대각시·사자·호랑이의 11명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적다. 양반에 대한 풍자와 처·첩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민중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야류하고는 달리 문둥이춤이 없는 대신 사자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영야류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탈놀음으로 제례의식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성 및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
South Korea -
학연화대합설무 (鶴蓮花臺合設舞)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학연화대합설무는 조선 전기 궁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다음에 학무와 연화대무를 연이어 공연하는 종합적인 춤을 말한다. 학연화대합설무는 학모습의 탈을 쓰고 추는 학무와 연꽃에서 동기(童妓)가 태어나는 연화대무로 구성된다. 학연화대합설무는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세계를 표현한 독특한 춤으로 예술성이 높고,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을 간직하고 있다. 학무는 임금을 송축하기 위해 학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고려때부터 궁중의례에서 행해 왔으며, 새의 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연화대무는 두 여자 아이가 연꽃술로 태어났다가 왕의 덕망에 감격하여 춤과 노래로써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온몸에 학의 탈을 쓴 두 무용수가 춤을 추다가 미리 설치된 꽃봉우리 두 개를 부리로 쪼면, 연꽃이 벌어지며 여자 아이가 튀어나오고 학은 놀라서 뛰어 나간다. 그 후 두 여자아이가 추는 춤이 연화대무이다. 공연상 두 춤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오랜 세월 전승되어 왔다. 반주음악으로는 세령산, 삼현도드리, 타령이 학춤을 출 때 사용되며, 연화대무에서는 궁중음악만을 사용한다.
South Korea -
남사당놀이 (男寺黨놀이)
남사당놀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전통적으로 남사당패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아다니면서 주로 서민 관객들을 위해 그들의 레퍼토리를 공연하였다.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극단은 원래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있는 천룡사라는 절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이 집단은 한국의 중부지방 근처에서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아다니고, 때로는 멀리 중국 북동부의 만주지방까지도 갔다. 활발하게 유랑 공연을 펼치며 민중놀이·탈춤놀이와 여러 지방의 계절 놀이에 영향을 미쳤다. 유랑예인들은 자신들이 펼치는 연희로 얼마 안 되는 벌이로 살아가면서 주로 사찰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사찰 승려들이 만드는 부적을 팔거나 하며 수입을 절에 시주하기도 하였다. 남사당패에는 전체 레퍼토리를 펼치는 데 약 40~50명의 남자 연희자들이 필요하다. ‘우두머리’라는 뜻의 꼭두쇠 밑에 기획자(곰뱅이쇠)와 뜬쇠(무대 관리자), 가열(연행자), 삐리(초입자), 저승패(늙은 단원), 그리고 잔심부름꾼과 패거리들의 장비를 운반하는 등짐꾼이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도제방식을 두고 그들은 세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하였다. 남사당놀이의 여섯 종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농악대(풍물) : 현재는 남사당패가 공연하는 농악은 원래 한국 중부의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유래되었다. 도로 행진과 개인놀음으로 구성된다. • 가면극(덧뵈기) : 열세 명의 연희자가 등장하는 네 마당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마당씻이, 잘못된 외래문화 수입을 비판하는 옴탈마당, 양반을 조롱하는 샌님잡이, 문란한 성에 대해 비판하는 먹중으로 구성된다. • 조선줄타기(어름) : 팽팽한 외줄 위에서 여러 가지 곡예를 펼치는 사이사이에 바닥의 어릿광대와 재담을 주고 받는다. 줄은 높이 2.5m에 약 9~10m의 길이로 설치된다. 현재 남사당패의 권원태(權元泰, 1967~,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줄꾼은 17가지의 곡예를 펼칠 수 있다. • 꼭두각시놀음(덜미) : 31종의 인형 총 51개가 등장하며 2마당 7거리로 공연된다. 무대는 지상에서 약 1.2m 높이에 검은 천으로 설치한다. 인형 조종자들이 막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면서 악사들과 함께 무대 앞에 앉은 화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극은 늙은 박첨지 마당, 평안감사 마당으로 구성된다. 늙은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유람거리, 피조리(박첨지의 조카)거리, 꼭두각시(박첨지의 아내)거리, 이시미(비단구렁이)거리로 구성된다. 평안감사 마당은 매사냥·상여거리·절 짓고 허는 거리로 구성된다. • 땅재주(살판) : 이 마당에서는 지상에서 다양한 곡예를 펼친다. • 사발돌리기(버나) : 약 40cm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사용하여 쳇바퀴를 돌리는 복잡한 기술을 선보인다. 때때로 담뱃대나 칼, 작은 얼레를 사용하거나 이런 도구들을 즉흥적으로 결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남사당놀이의 여섯 마당 중에서 가면극과 꼭두각시놀음은 특히 노골적인 사회적 메시지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 희극의 등장인물들은 양반 주인과 저항하는 하인, 늙은 부부와 첩, 속세의 쾌락에 빠져 버린 승려, 끝없는 억압과 착취로 고통 받는 민중과 같은 각각 다른 사회계층의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을 대표한다. 이 극들은 단지 흥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단이 없던 민중을 대신해서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들어졌다. ‘신분’이라는 제도의 멍에를 쓴 서민 관객들의 마음속에 자유와 평등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평등과 인간 존중의 이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탈과 꼭두각시는 각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들 마음속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받고 심지어 죽음의 두려움마저도 유쾌한 놀이로 극복한다. 이와 같이 남사당놀이는 재치 있는 대화와 상징적인 춤과 몸짓을 통해 자유와 평등 사상을 옹호하였다. 그들은 비록 현실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만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한국 민초들의 소망을 대변하였다. 이 주제들은 전 세계의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 놀이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여러 가지 몸짓과 춤으로 소통을 더 쉽게 해 주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 준다. 남사당패는 보통 입구와 출구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둘러싼 야외 공터에서 공연을 한다. 그러므로 공연장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유랑예인들은 들르는 마을마다 평화와 풍요를 비는 의식을 열고 즐겁고 큰 소리로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음악과 연극과 춤과 곡예로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억압받는 서민들에게 즐거운 순간을 선사하고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남사당놀이는 현대 문화 창조의 원천으로서 본질적 가치가 있다. 적어도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종합 민속예술은 광범위한 장르의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한다. 그 내용은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용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던 영화 <왕의 남자>(2005)는 그런 가능성을 재빠르게 증명하였다. 이 영화에는 많은 장면에서 조선줄타기·풍물·가면극놀이·꼭두각시놀이가 등장한다. 유랑예인인 두 주인공이 우연히 왕궁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이 영화의 경이로운 성공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남사당 레퍼토리의 주제를 활용할 영감을 주었다.
South Korea 2009 -
가곡(歌曲), 국악 관현반주로 부르는 서정적 노래
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 음악에서 정가란 정악(正樂)에 해당하는 성악곡을 일컫는다. 가곡·가사(歌辭)·시조(時調)가 정가이며, 이 곡들은 상류 계층 사람들이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부르곤 했다. 가사나 시조와 같은 정가의 형식과 달리, 가곡은 6현 치터인 거문고, 가로로 부는 커다란 대나무 플루트인 대금, 12현 치터인 가야금, 피리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가곡은 음악적·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가곡은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2조 1항에 명시된 ‘공동체와 집단 및 개인이 스스로 문화유산의 일부분이라고 인식하는 관습·표상·표현 그리고 지식 및 기술’이라는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에 합치한다. 가곡은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2조 2항의 ‘공연예술’ 영역에 해당된다. 전통 가곡은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이 불러온 고유한 예술 형식으로서, 서양의 성악과는 다르다. 가곡은 조선 시대(1392년~1897년) 상류 계층에서 유행하던 성악곡이다. 가곡은 남성의 노래인 남창 26곡과 여성의 노래인 여창 15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남성 가창과 여성 가창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창의 모든 음계는 몸속에서 울려 나오는 힘찬 소리인 겉소리로 부른다. 반면에 여창은 겉소리와 고음의 가냘픈 소리인 속소리를 사용한다. 가곡은 장엄하면서도 평화로운 음계인 우조(羽調)와 구슬픈 음계인 계면조(界面調)를 사용하고, 16박 또는 10박 장단으로 연주된다. 반주는 보통 6현 치터인 거문고, 12현 치터인 가야금, 세피리(겹혀의 작은 악기), 가로로 부는 플루트인 대금(大笒), 바이올린 같은 악기인 해금(奚琴), 모래시계 모양의 드럼인 장구 등의 관현악기로 연주된다. 덜시머(hammered dulcimer)와 같은 양금(洋琴)과 대나무 플루트인 단소(短簫)가 반주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가곡은 오랜 세월동안 변형되지 않고 보전되어 왔으며 가곡 명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전수되고 있다. 가곡은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유산이다.
South Korea 2010
ICH Materials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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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 토펭
토펭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이다. 토펭(Topeng)'은 인도네시아어로 ‘나무 가면’을 뜻하는 말로, 어원인 'tapel'은 '억누르다' 혹은 '얼굴을 눌러서 덮은 것' 또는 '나무의 뿌리'를 의미한다.\n\n‘판지 토펭’은 토펭 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바 섬에서 전승되어온 ‘판지(Panji)’ 연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판지 토펭은 12세기 경 카드리 왕국(Kadri, 혹은 Kediri Kingdom)의 왕자였던 판지가 결혼식 전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신부 키라나 공주를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판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동남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특히 서 자바섬의 사이어본(Cirebon)과 동 자바섬의 마랑(Malang) 지역에서 연행하는 토펭 춤을 비롯한 여러 인도네시아 전통 춤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n\n인도네시아의 토펭 춤은 동 자바섬의 마랑, 발리,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마두라 섬, 자바 북쪽 해안의 치레본 등 다섯 개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오늘날의 토펭 춤은 15세기 자바섬과 발리 섬에 일반적으로 남아있던 토펭 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 무용극은 힌두교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칼리만탄 섬의 토착 부족인 다약족은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추는 후독(Hudoq) 춤에서 보듯 자연의 힘과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토펭 춤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추고 있다. 힌두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hbarata) 같은 서사시들이 토펭 무용극의 주제가 되었다.\n\n판지 토펭 춤은 흰색 가면을 쓴 무용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마치 걸어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은 판지 토펭의 정수로 꼽힌다. 무용수는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에 대한 우화, 영웅담, 신화들을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토펭 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세기 힌두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의 왕인 ‘하얌 우르크(Hayam Wuruk, 1334~1389)’를 노래한 서사시 ‘나가라크레타가마(Nāgarakrĕtāga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자 왕국을 순행(巡幸)하던 중 왕이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황금빛 가면을 쓰고 토펭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1365년에 기록된 ‘나가라크레타가마’의 필사본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n\n출연자: 다디조노 달마완(Dadijono Darmawan)\n예술감독: 다디조노 달마완\n안무가: 다디조노 달마완
Indonesia -
판지 토펭
토펭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이다. 토펭(Topeng)'은 인도네시아어로 ‘나무 가면’을 뜻하는 말로, 어원인 'tapel'은 '억누르다' 혹은 '얼굴을 눌러서 덮은 것' 또는 '나무의 뿌리'를 의미한다.\n\n‘판지 토펭’은 토펭 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바 섬에서 전승되어온 ‘판지(Panji)’ 연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판지 토펭은 12세기 경 카드리 왕국(Kadri, 혹은 Kediri Kingdom)의 왕자였던 판지가 결혼식 전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신부 키라나 공주를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판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동남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특히 서 자바섬의 사이어본(Cirebon)과 동 자바섬의 마랑(Malang) 지역에서 연행하는 토펭 춤을 비롯한 여러 인도네시아 전통 춤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n\n인도네시아의 토펭 춤은 동 자바섬의 마랑, 발리,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마두라 섬, 자바 북쪽 해안의 치레본 등 다섯 개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오늘날의 토펭 춤은 15세기 자바섬과 발리 섬에 일반적으로 남아있던 토펭 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 무용극은 힌두교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칼리만탄 섬의 토착 부족인 다약족은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추는 후독(Hudoq) 춤에서 보듯 자연의 힘과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토펭 춤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추고 있다. 힌두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hbarata) 같은 서사시들이 토펭 무용극의 주제가 되었다.\n\n판지 토펭 춤은 흰색 가면을 쓴 무용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마치 걸어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은 판지 토펭의 정수로 꼽힌다. 무용수는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에 대한 우화, 영웅담, 신화들을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토펭 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세기 힌두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의 왕인 ‘하얌 우르크(Hayam Wuruk, 1334~1389)’를 노래한 서사시 ‘나가라크레타가마(Nāgarakrĕtāga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자 왕국을 순행(巡幸)하던 중 왕이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황금빛 가면을 쓰고 토펭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1365년에 기록된 ‘나가라크레타가마’의 필사본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n\n출연자: 다디조노 달마완(Dadijono Darmawan)\n예술감독: 다디조노 달마완\n안무가: 다디조노 달마완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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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 판지 토팽
토펭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이다. 토펭(Topeng)'은 인도네시아어로 ‘나무 가면’을 뜻하는 말로, 어원인 'tapel'은 '억누르다' 혹은 '얼굴을 눌러서 덮은 것' 또는 '나무의 뿌리'를 의미한다.\n\n‘판지 토펭’은 토펭 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바 섬에서 전승되어온 ‘판지(Panji)’ 연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판지 토펭은 12세기 경 카드리 왕국(Kadri, 혹은 Kediri Kingdom)의 왕자였던 판지가 결혼식 전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신부 키라나 공주를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판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동남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특히 서 자바섬의 사이어본(Cirebon)과 동 자바섬의 마랑(Malang) 지역에서 연행하는 토펭 춤을 비롯한 여러 인도네시아 전통 춤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n\n인도네시아의 토펭 춤은 동 자바섬의 마랑, 발리,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마두라 섬, 자바 북쪽 해안의 치레본 등 다섯 개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오늘날의 토펭 춤은 15세기 자바섬과 발리 섬에 일반적으로 남아있던 토펭 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 무용극은 힌두교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칼리만탄 섬의 토착 부족인 다약족은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추는 후독(Hudoq) 춤에서 보듯 자연의 힘과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토펭 춤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추고 있다. 힌두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hbarata) 같은 서사시들이 토펭 무용극의 주제가 되었다.\n\n판지 토펭 춤은 흰색 가면을 쓴 무용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마치 걸어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은 판지 토펭의 정수로 꼽힌다. 무용수는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에 대한 우화, 영웅담, 신화들을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토펭 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세기 힌두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의 왕인 ‘하얌 우르크(Hayam Wuruk, 1334~1389)’를 노래한 서사시 ‘나가라크레타가마(Nāgarakrĕtāga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자 왕국을 순행(巡幸)하던 중 왕이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황금빛 가면을 쓰고 토펭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1365년에 기록된 ‘나가라크레타가마’의 필사본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n\n출연자: 다디조노 달마완(Dadijono Darmawan)\n예술감독: 다디조노 달마완\n안무가: 다디조노 달마완
Indonesia Nov 26, 2010 -
우즈벡의 멜로디 ‘마콤’
전통 기악-성악 연주 ‘마콤 예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n마콤(Maqom)은 여러 성부로 구성되는 복잡한 작곡이며 몇 가지 특정규칙을 엄격히 고수한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들과 크게 구별된다. 우즈베키스탄 영토 내에서 형성된 마콤은 악기 연주 부분인 마쉬킬로트(Mushkilot)와 성악 부분인 나스르(Nasr)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마콤은 부하라 토후국의 주도인 부하라(Bukhara), 호레즘 칸국(Khorezm Khanet)의 주도인 히바(Khiva), 코칸드 칸국의 주도인 코칸드(Kokand) 등 세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n\n그 결과 세 가지 유형의 마콤이 형성되었다. 부하라에서는 여섯 개의 마콤이 포함된 ‘샤쉬마콤(Shashmaqom)’이, 호레즘에서는 여섯 개 반의 마콤이 포함된 '호레즘 마콤(Khorezm maqoms)’이 생겼고, 코칸드에서는 네 개의 마콤을 포함한 ‘페르가나-타슈켄트 마콤 사이클(Ferghana–Tashkent maqomcy\u0002cle)’이 궁정의 음악전문가들에 의해 편집되었다. \n\n이 영상에서는 역량 있는 연주자들과 가수들이 세 가지 마콤 사이클을 모두 연주하는 공연 장면과 더불어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음악교육기관 재학생들의 연주도 보여준다.\n\n녹음은 타슈켄트시, 페르가나, 호레즘, 부하라 지역에서 각기 진행되었으며, 마콤 연구자들과 이 분야에서 후진을 양성해온 장인들과의 인터뷰로 내용이 한층 더 풍부해졌다.
Uzbekist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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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고등교육 네트워크(APHEN-ICH) 국제세미나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다양성과 동질성
여러 국가에 걸쳐 분포하는 무형유산의 기본적 특성과 문화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형유산은 국경을 초월한 공유성을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과 확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경계를 국경과 동일시하는 근대 국민국가 체계로의 전환은 ‘국가 내 문화’ 또는 ‘경계 내 문화’라는 개념을 형성하였으며, 문화의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n\n문화의 배타적 소유권 개념은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도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문화유산과 문화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갈등이 과도한 등재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 분위기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유네스코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지역 협력을 증진하며 국제 보호 활동이라는 협약의 취지를 되살리는 동시에, 국가 간 갈등에 대한 예방과 이미 발생한 갈등의 해결방안으로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유 무형유산의 공동등재를 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공동등재를 강조하며, 문화소유권으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이행지침을 개정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한 연계성이 지역적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n\n이와 더불어 당사국은 소지역 및 지역적 수준에서 협력하도록 관련 공동체, 전문가, 전문센터, 연구소가 특히 그들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하여 연계성을 발전시키도록 장려되고 있다. 특히 2018년 11월 모리셔스에서 개최된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씨름이 남북 공동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무형유산이 민족 간 문화적 이해와 연대를 증진하고 평화 구축에 이바지함을 보여준다. 비단 공동등재된 무형유산뿐만 아니라 공유성이 무형유산의 근간임을 인정할 때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국가 간 평화 달성의 초석이 됨을 인지해야 한다.\n\n따라서 본 세미나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동질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옻칠 등 아태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는 비슷하지만 다양한 무형유산을 살펴보며 무형유산이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하고, 포괄적 국제협력과 평화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South Korea 2021 -
네팔의 민속무용
DVD1_네팔의 민속무용\n\n네팔의 공동체 사람들은 다양한 민속무용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실 민속무용은 시골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의 노래와 춤에서는 종교적 영향도 쉽게 발견되는데, 주로 인간과 가축의 행복 및 순조로운 날씨와 풍작에 관여하는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래하고 춤춘다. 네팔은 매우 다양한 지형적 특징만큼 문화적 특성도 매우 다양하다. 민요와 민속무용은 문화와 카스트, 계절, 지형적 특징에 따라 다른 네팔의 민속무용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셰르파는 테라이 지역에 사는 타루 족과 서로 다른 노래와 춤을 즐긴다. 마찬가지로 봄의 노래와 춤은 기쁨을 표현하지만 겨울의 노래와 춤은 슬픔을 표현한다. 본 DVD에서는 네팔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토착 공동체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일상적으로 연행되는 민속무용들을 소개한다.
Nepa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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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
CD7_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n\n까 후에(Ca Hu?; 후에 노래 부르기)는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Hu?)에서 연행되는 독특한 전통 실내악이다. 까 후에는 궁중음악에서 유래했다. “응우옌 왕들과 대비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 있었다. 1” 까 후에는 처음에 왕족, 고위 관료, 부자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었다. 이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까 후에는 점점 다양한 후에 민속음악 양식의 영향을 받게 됐다.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는 예를 들어 ‘반 응으(b?n Ng?) 10곡’ 또는 ‘탑 투 리엔 호안(Th?p th? lien hoan)’이라고도 하는 ‘반 따우(b?n Tau) 10곡’이 제물 봉헌을 위한 의식이나 특별 행사에서 궁중 악사들에 의해 궁중에서 연주되는 등 다시 궁중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까 후에는 지도층과 일반 대중의 예술 작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음률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속음악과 궁중음악의 정수를 하나로 섞어 놓았다. 이 때문에 까 후에는 과거에 새해맞이 의식 또는 승진 축하나 개업 행사 등 기쁜 일이 있을 때 고위 관료, 지도층, 후에 주민들의 집에서 연주됐다.\n\n과거에는 지도층, 고위 관료, 학자나 아름답고 뜻 깊은 노랫말을 지을 수 있는 사람만 까 후에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면서 연주 음악과 노래를 통해 생각을 공유했다. 한 사람의 노래와 악기 연주는 다른 사람의 노래와 작곡에 영감을 주는 형식이었다. 까 후에 참여자들은 또한 관객이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재능을 존경하며 즐겼다. 최근에는 전통 까 후에 이외에 무대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가 연주된다.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는 상업 음악처럼 작곡가, 연행자, 관중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둔다. 실내악 까 후에의 특징인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은 이제 개인의 집에서 연주되는 까 후에에만 남아 있다.
Viet Nam 2015 -
베트남 북부 산악지역 일부 소수민족의 민속음악
CD1_베트남 북부 산악지역 일부 소수민족의 민속음악\n\n베트남 북부 산악지역은 낀족(Kinh) 및 베트남 54개 소수민족 가운데 28개 소수민족의 거주지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민속 문화, 특히 다양한 민속음악이 발달했다. 베트남 북부 산악지역 몇몇 소수민족의 민속음악 CD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 레퍼토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수록된 민속음악은 1959년(트랙 1, 2, 5, 7), 1964 년(트랙 10, 15), 1970년(트랙 3, 4, 6, 8, 9, 11, 12, 13, 14, 16)에 녹음된 것이다. 연행자는 타이족(Thai), 따이족(Tay), 눙족(Nung), 까오란족(Cao lan), 푸라족(Phu la), 흐몽족(Hmong) 등 북부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민속 예인이다. 이 시기에 이뤄진 녹음은 음질 면에서는 좋지 않지만 연구자나 민속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역사 및 예술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CD를 통해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시대의 민속예술과 오늘날 같은 인터넷 시대의 민속예술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Viet Na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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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인들의 전통 멜로디(2014-2015 우즈베키스탄 순수예술연구소 소장 자료 복원 및 디지털화 사업)
2015년,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무형유산 아날로그 자료 복원 및 디지털화 협력사업의 일환으로서 유네스코우즈베키스탄위원회,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산하 예술 연구소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민속음악유산 음원 CD 세트, 「우즈베키스탄의 멜로디(Melodies from Uzbekistan)」를 발간했습니다.\n\n이 음원 선집은 우즈베키스탄 국립학술원 산하 예술연구소의 오래된 오디오 녹음 자료들을 현재 사용되는 매체에 적합한 포맷으로 변환하여 발간한 것입니다. 선집에 담긴 음원들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즈베키스탄과 국경 지역에서 현장 수집된 민속 음악 자료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민속 음악입니다. 총 여덟 장의 CD는 노동, 가축 사육, 의식용 노래 등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래 유산과 두타르(Dutor), 가지르 나이(G’ajir Nay)와 같은 각종 전통 현악기, 관악기 등으로 연주한 기악 외에도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산인 마콤(Maqom)이나 구전예술전통인 도스톤(Doston) 등을 담고 있습니다.\n\n중앙아시아의 이국적인 전통 음악이 낯설게만 들릴 수도 있지만, 여덟 장의 음원 CD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민속 음악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설자료(한국어, 영어, 우즈베키스탄어)가 포함되어 있어 국내외 대중들 역시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n우즈베키스탄의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적 특징을 모두 들려주는 CD 선집은 앞으로 무형유산 교육 및 홍보 자료로서 다양한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Uzbekistan 2015 -
페르가나 계곡의 무형유산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주, 안디잔 주, 나망간 주를 아우르는 페르가나 계곡 지대에는 구전 전통, 공연 예술, 전통 의례와 축제, 그리고 전통 공예와 같은 빼어난 무형유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점점 잊혀져가고 있습니다.\n\n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4개국은 2011년부터 중앙아시아-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의 협력 사업으로 ‘온라인 툴을 활용한 중앙아시아 무형유산 목록작성 지원 3개년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본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무형유산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이를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n\n우즈베키스탄에서는 민속예술연구센터가 유네스코우즈베키스탄위원회와의 협력 하에 본 3개년 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친 현지조사를 통해 페르가나 계곡 지역, 자라프샨과 우즈베키스탄 남부 지역, 나보이, 부하라, 코레즘 주와 카라칼팍스탄공화국 등지의 무형유산 종목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n\n페르가나 계곡에서의 1차 현지조사가 완료된 시점인 2012년, 우즈베키스탄과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수집된 영상, 음원, 사진, 보유자 인터뷰 자료 중에서 일부를 선정하여 10장의 DVD/CD 세트로 엮었습니다. 또한 보다 많은 이들이 해당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영어, 우즈벡어, 한국어 해설집을 제작하여 선집과 함께 배포하였습니다.\n\n페르가나 계곡은 타지크, 위구르, 투르크 족 등 각기 다른 공동체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각자의 고유한 전통들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작된 우즈베키스탄의 무형유산 중 하나인 ‘카타 아슐라(Katta Ashula)’는 미술과 노래, 반주, 그리고 서사시를 통합한 독창적인 민요의 한 종류로, 이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n\n자료들을 디지털화 시키고, 배포하여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유산을 알리려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대 간 전수가 단절되어 사라져가는 무형유산들을 보호하고 전문가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 문화 간 이해와 대화가 증진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Uzbekist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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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필수 도구로서 디지털 기록화 국제세미나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디지털헤리티지랩과 공동으로 2019년 7월 20일 ‘미래를 향한 과거 –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필수 도구로서 디지털 기록화 국제세미나를 주최했습니다.\n\n세미나는 무형유산의 아카이빙과 시각화를 다룬 1세션과 유형유산의 디지털 기록화 방안을 다룬 2세션, 그리고 문화유산 디지털 데이터 구축을 둘러싼 한국의 도전과제를 다룬 3세션으로 진행됐으며, 본 자료집에는 세미나에서 발표된 원고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South Korea -
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27 (잔치 음식 '상서로운 날의 특별한 음식')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27권의 테마는 「잔치 음식 '상서로운 날의 특별한 음식'」입니다.
South Kore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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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전통공연예술의 인식제고와 참여카키세니협회(Kakiseni Association)는 예술가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으로서, 지난 2001년 행사에 대한 정보를 게시하고 오디션, 비평 및 인터뷰 등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처음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예술가들의 정보 허브(Hub)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NGO단체로 등록된 카키세니는 공연예술의 관객규모와 감상기회의 확대, 말레이시아 공연예술 기술과 공연의 질적 향상,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말레이시아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행사 및 계획 수립 등을 포함시켜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Year2017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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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를 통해서 본 전통공연예술 실황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의 공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문화계의 타격은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현재의 재앙을 체감하게 해 준다.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공공문화시설은 임시 휴관을 했고,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 또한 대부분 취소 및 연기된 실정이다. 특히 공연예술 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고 있는데, 밀집도가 높고 신체 접촉이 잦은 행사장 및 극장의 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에서는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n\n전통공연예술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시기를 전통공연예술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지, 어떤 대안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전통공연예술은 현재의 위기를 타파할 다양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예를 들어 국립국악원(https://www.youtube.com/user/gugak1951)과 서울돈화문국악당(https://www.youtube.com/channel/UCr2aWbG8Hz-EAl7cznvGO5Q)은 현재 네이버TV와 유튜브(Youtube) 생중계 서비스를 이용하여 무(無) 관중과 실시간 송출로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국립오페라단, 러시아의 볼쇼이발레단 등 많은 해외 전통 극단에서도 최신 기술을 통한 관객 흥미 유발을 위해 노력 중이며, 이를 위해 화상 연결을 통한 별도의 실내 연습 영상을 공개하기도 한다.\n\n공연영상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과는 다르게 온라인 생중계를 통한 공연관람은 관객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즉석이 가미된 연주 변형, 흥이 나서 무의식중에 나오는 추임새 등이 현장감을 높여 마치 실제 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지정 좌석에서의 공연관람과는 달리 영상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의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원거리 온라인 생중계는 관람객의 편의를 증대시켰다. 관객은 보다 편안한 자세로 감상이 가능하며 자유롭게 음식이나 음료를 곁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옆사람과의 육성 대화가 허용되며, 무대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과의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통해 공연 관람의 감상을 공유할 수 있다.\n\n그러나 이 새로운 시도에는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관람의 편의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나, 현장관람과 비교하여 공연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최신 기술을 이용한 생동감 있는 공연 송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크린과, 스피커를 통한 공연관람은 공연장의 현장감, 생동감을 전하는데 아직까지 한계가 있으며, 현장 공연을 통해 관객이 받게 되는 감동을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이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다.\n\n바이러스의 확산은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으며, 그에 따른 공연예술계의 변화는 매우 가시적이다. 공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인 관객의 부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온라인 생중계 현상은 상당히 유의미한 도약이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n\n대중문화에 익숙한 10-20대 청소년들에게 비주류 문화가 되어버린 전통공연예술의, 온라인 정보 공유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시도는 전통문화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완화하고 접근성을 증가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기 속에서 모색한 새 활로를 통해 전통공연예술의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해본다.\n\n사진 : 오고무 공연 ⓒ 셔터스톡/Jack QYear2020Nation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