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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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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시대의 무형유산 정보: 생산과 보급에 관한 질문본 글은 최근 에세이 시리즈의 두 번째 글로, 인권 보호의 한 형식으로서 무형유산의 중요성과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시대에서 무형유산의 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 시대의 유산”이라는 것이 새로운 개념일까? 우리는 “위기 시대”를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 보호가 필요한 수많은 지식·관행과 자연적·인공적 환경에 관한 논의들 속에서 어떻게 ‘위기 시대’라는 개념이 강화되었을까?\n\n“위기 시대의 유산”이라는 발상은 무형유산을 둘러싼 담론에서 처음 표면화되었다. 문화적 상징에 대한 물질적 훼손 위협에 관한 담론이었다. 페데리코 렌제리니(Federico Lenzerini)는 “테러와 충돌 그리고 문화유산 보호 책임“(2016)에서, 공동체를 제거하려는 의도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문화유산 파괴 사례들의 공통분모라고 언급했다. 그러한 예로, 12세기 말 술탄 알 아지즈 오트만은 이집트에 있는 멘카우레 피라미드의 일부를 철거했고, 1990년대 발칸전쟁 당시 옛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모스크와 여러 종교적·역사적 건축물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었으며, 2001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에 있는 두 개의 거대 고대 불상을 무너뜨렸다. 렌제리니의 논고는 문화유산을 모든 인류에게 속한 “공공의 이익”(common good)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는 ‘무력충돌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1954)과 ‘세계유산협약'(1972)의 서문을 언급하며, “문화유산 또는 자연유산의 여하한 품목의 손괴 또는 손실은 세계 모든 국가 유산의 유해한 빈곤화를 초래한다”고 기술했다. 유형유산에 대한 이러한 집단적 귀속감은 무형유산이 대두된 후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무형유산은 세계화와 전통적 생활방식의 중단 등 유산에 추상적 위협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유형(자연 등)과 무형의 모든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근원적 의무이자 인류의 도리라며 그 책임을 정당화한다. 또한 “위기 시대”라는 발상으로 인해 일부 사물과 관습이 인류를 대표하는 유산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위기 시대”는 유산 관련 지식과 공적 조치들이 우리가 현재 인류의 유산이라고 부르는 문화적 상징들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음이 분명하다.\n\n이러한 “위기 시대”와 유산의 연관성을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보호관행은 여러 문화적 교류와 정책 및 사업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고 도시는 여러 형태의 봉쇄에 들어가며 축제가 취소되는 등 여러 재앙이 닥친 지금, 유산 보호는 보다 복잡하고 도전적인 일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예방책이 된 이후, 우리는 그나마 일상을 유지하고 서로 연결되기 위해 거의 본능적으로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무형유산 연행자들도 각자의 일을 지속하기 위해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즉, 관련 활동을 이행하기 위해 온라인 인프라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유네스코는 중앙아메리카를 위한 실행계획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기록유산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에는 인터넷 접근성이 부족한 많은 이들을 위해 공동체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관들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통해 무형유산의 보호·전승을 지속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단, 이번에는 공동체 전통을 디지털화하고 관습을 전자매체에 기록하며 문화적 의례를 영상에 담는 것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에 대응하여 무형유산 보호·전승에 인터넷이나 온라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유산의 ‘화석화’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유산 기록과 보관, 정보 보급 분야에서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필자는 무형유산의 지속적 보호·전승을 위해서는 위기 시대에 무형유산 정보 보급을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공동체 또는 개인 차원에서 무형유산 정보의 생산도 고려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동체와 집단 및 개인이 무형유산 정보 생산의 중심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공동체 무형유산과 관련 윤리체계는 물론 보건상 위험요소들을 고려하는 새로운 기록 방식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n\n디지털 기술의 활용으로 정보의 빈곤화를 완화할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대책으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험의 공유와 지속적 네트워킹은 다양한 맥락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데 있어 중요하며, 특히 공동체 니즈와 유산 업무를 지속하기 위한 도구들을 파악하는 데 있어 유용할 것이다. 사회적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디지털 형식의 무형유산 정보를 소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무형유산 정보(일례로, 남아시아·태평양 무형유산 온라인 전시)의 생산은 실제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한다. 필자는 무형유산 공동체와 전통 보유자들이 무형유산 정보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모든 노력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Year2020NationAfghan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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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바라타나티암(Bharatanatyam)바라타나티암(Bharatanatyam)은 인도의 8가지 고전무용 중 가장 오래된 고전무용 전통이며 인도남부에서 시작되었다. 이 예술은 사원에서의 전통으로 시작되어 나중에는 극장식 공연으로 발전했다. 바라타나티암의 역사는 인도 남부, 특히 타밀 나두의 문화적 전통만큼이나 생생하다. 조각, 미술, 음악 및 기타 모든 예술 전통이 오늘날까지 그 중요성을 성공적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이 오래된 예술과도 연결되어 있다.\n\n전통적인 바라타나티암은 마그람(margam)이라고 부르는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된 프레젠테이션을 따른다. 예술 형식에는 일반적으로 솔로 무용수 및 음악가와 여러 명의 가수가 포함된다. 음악과 가창 공연과 춤 동작은 고대 나트야 샤스트라(Natya Shastra)와 다른 많은 산스크리트어와 타밀어 텍스트로 거슬러 올라간다.\n\n바라타나티암 여성 솔로 무용수는 타밀 힌두교 신부 드레스와 유사한 복장을 입는다. 무용수는 춤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디자인 된 밝은 색의 사리를 착용한다. 그녀의 몸은 귀, 코, 머리, 목에 윤곽을 그리는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n\n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할 때 세계의 많은 공연이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공연 예술은 이에 적응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아이스와랴 락슈미는 온라인 바라타나티암 세션을 제공하고 있다. 세션을 통해 참가자는 멘토 또는 강사로부터 유사한 학습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아이스와랴 락슈미는 인도의 유명한 칼락슈트라(Kalakshetra) 재단에서 바라타나티암 교육을 받았으며 그녀의 세션은 학교에서의 춤과 교육 방식을 따른다. 바라타나티암 전통의 기본에 초점을 맞추면 참가자를 예술가 자신과 고전 인도예술의 더 나은 감정가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n\n자세한 내용은 강사에게 (lakshmi.aiswaryaa@gmail.com) 문의 바란다.\n\n사진 1 : Dear All, Image courtesy of Prateeba Mayuran, Bharatanatyam and Kuchipudi dancer, Dance photographer, Chennai, India\n사진 2 : Handful of Flowers, Image courtesy of Prateeba Mayuran, Bharatanatyam and Kuchipudi dancer, Dance photographer, Chennai, IndiaYear2021Nation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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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이겨내고 있는 카트만두 계곡의 공동체들카트만두 계곡의 주민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사원이 처음으로 폐쇄되고 진입이 금지되는 것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축제가 취소되었고, 이런 일은 2015년 대지진 이후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으며 중요한 의식들만 폐쇄적으로 진행되었다. 많은 중요한 축제와 의식들은 형식적인 의례와 용서를 비는 의식으로 제한되었다. 거대한 군중 대신에 빈 광장과 사원의 닫힌 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n\n코로나 19는 일년 내내 축제, 행렬 및 의식으로 유명한 카트만두 계곡 내의 도시 및 마을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무형유산의 지속성을 위해 공동체와 개인들은 장기간의 불확실성을 타파할 새로운 대안과 정상 체계를 모색해야만 했다.\n\n2020년 9월 3일 개최된 판탄(Patan)시의 가장 큰 축제인 카루나야마(Karunayama)의 전차 행렬에서 현지인과 경찰 사이의 격렬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신상과 전차가 길가에 좌초된 지 수개월, 지역 주민들은 다시 전차를 끌기로 결정했다. 이 행사가 끝난 후 지자체, 지구장, 지역사회 구성원 간의 협의가 진행되었다. 며칠 후 상징적인 행렬과 용서 의식이 거행되었다. 코로나 19에 대한 엄격한 보안조치와 필요한 방역조치가 취해졌다. 마스크나 안면보호막을 착용한 제한된 인원의 사람들 만이 전차를 끌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n\n카트만두 계곡의 여러 곳에서 많은 의례들이 대중의 참석 없이 계속 진행되었다. 의례 중 하나는 대승 불교의 중요한 경전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파탄의 카와 바하(Kwa Baha), 히라냐바르나 마하비하라(Hiranyavarna Mahavihara) 불교 수도원에 있는 프라기야파라미타(Pragyaparmita)가 그것이다. 프라기야파라미타는 “위대한 지혜”라는 뜻이다. 이 수도원에 있는 경전은 금으로 쓰여져 있으며 서기 1224년에 쓰여진 8만 개의 불경을 포함하고 있다. 복원은 음력에 따라 매 3년 마다 윤년이 돌아오는 해에 한달 동안 이루어졌다. 올해는 윤월과 함께 불교 사제들이 수도원을 폐쇄한 뒤, 닫힌 문 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n\n또한,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파찰리 바이라브(Pachali Bhairav)의 연례 축제는 10월 17일부터 10월 21일까지 개최되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코로나 19에 대한 완벽한 예방조치로 새로운 정상성에 적응하기 위해 추가 조치를 취했다. 큰 냄비의 형태의 파찰리 바이라브 신상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개인방호복(PPE)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체로도 매우 훌륭한 연출이었다.\n\n마찬가지로 카트만두 계곡의 코카나(Khokana) 마을은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가장 중요한 연례 행사 인 시칼리 자트라(Shikali Jatra) 행사를 진행했다. 신들은 전통적인 가면과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공동체는 바이러스로부터 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 축제는 한때 많은 인파가 있었지만 올해는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다.\n\n또 다른 도시인 박타푸르(Bhaktapur) 에서는 10월 24일에 시작된 나바두르가(Nava Durga)라는 이름의 중요한 연례 탈춤을 진행했다. 인파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의례와 박타푸르의 궁전 광장에서 수행되었으며 역시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다. 기존에 이 의례는 박타푸르시와 인근 마을의 여러 곳에서 공연되며 6월까지 지속되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팬데믹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연행될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n\n사람들은 보건 전문가들과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축제를 조직하고 의례를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는 악령, 가뭄 및 전염병을 막기 위해 진행된 의식과 축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트만두 계곡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러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n\n사진 1 : Chariot of Machindranath guarded by police to avoid crowds. ©Monalisa Maharjan\n사진 2 : Devotees burning butter lamps while wearing masks. ©Monalisa MaharjanYear2020Nation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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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가상 유산 여행전세계는 여전히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여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 문화유산 분야도 다른 경제 부문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사람들의 사회적 관습과 일상 생활이 유산과 연관된 곳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네팔의 경우 축제와 종교적·사회적 의식이 취소되거나 공적 행사로만 국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사원을 방문하고 의식을 치르던 것도 모두 중단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번 팬데믹에 대한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화유산과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n\n매년 석가탄신일(‘붓다 푸르니마’, ‘붓다 자얀티’로도 불림)은 음력 바이사크(Baishak)달의 보름날(주로 4-5월 중)에 기념하고 있다. 석가탄신일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다양한 의식과 행사, 기도로 축하하고 있다. 올해 석가탄신일은 5월 7일이었지만 전국적인 이동 제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집에서 의식을 올리고 수도원과 사원에서 소규모 행사를 치렀다. 원래 많은 인파가 몰려들던 주요 사원에는 관리인과 승려, 소수의 주민 등 일부만이 방문할 수 있었다.\n\n석가탄신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부처의 출생지인 룸비니를 방문하지만, 올해에는 불가능했다. 이에, 스토리사이클(StoryCycle)은 영국문화원과 함께 룸비니 가상 유산 투어(Virtual Heritage Tour)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룸비니에는 불탑, 수도원, 사원과 같은 고고학적 유적이 남아있지만,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종교적이고 영적인 유대감을 제공한다. 가상 유산 투어를 진행한 아닐 치트라카르는 사회적 기업가로, 유산 관광을 조직하고 보존과 발전에 관한 고무적인 강연을 펼쳐왔다. 그는 지난 30년간 룸비니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역할로 힘써왔다.\n\n가상 유산 투어를 통해 룸비니를 간략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마야데비(석가의 어머니) 사원, 성스러운 정원, 아쇼카 석주(기원전249년 아쇼카 왕이 이곳이 부처의 탄생지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돌기둥), 그리고 부처의 일생 및 사후와 연관된 주요 장소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쿠단(석가가 부처가 된 후 그의 부모와 아들 라울을 처음 만난 곳)과 같이 덜 알려진 장소도 있었다. 8대 불탑 가운데 하나인 라마그라마는 부처가 타계한 후 그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까지 개방되지 않은 유일한 불탑이다. 또한 치트라카르는 룸비니에 여러 나라의 불교를 대표하는 44개의 고유한 기념물을 만드는 등 룸비니의 종합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룸비니에 국제공항이 완공된 후 모습과, 룸비니가 다른 주요 불교 성지와 연계되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n\n치트라카르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이들의 무형적 요소를 설명하며 투어를 흥미롭게 만들었는데, 그 일환으로 불탑 건축의 수학적 원리, 부처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아쇼카 왕의 불교 전파 노력, 부처의 간단명료한 가르침 등을 들려주었다. 비록 가상이었지만 투어는 현지의 평온함을 전달하고 운하와 두루미 등 주변 자연을 찬미하기에 충분했다.\n\n이번 투어는 1시간으로 계획되었으나 백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투어 마지막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투어에는 수화통역사가 소통을 도왔다.\n\n행사 영상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n\nhttps://www.facebook.com/storycycle/videos/253552219340656/\n\nEvent Page: https://www.facebook.com/events/730005211072259/\n\n사진 : 룸비니 © 아닐 치트라카르Year2020Nation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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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축제: 오남(Onam)오남은 인도의 케랄라 주의 최대 수확 축제이다. 열흘간 개최되는 오남 축제는 칭감(Chingam)이라고 불리는 말라얄람력(Malayalam)에 따른 첫 달의 시작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매년 8월이나 9월에 열린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1년 축제는 8월 12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되었으며 코로나19에 따른 모든 대응상황을 염두에 두고 수많은 열의가 모여 개최 되었다.\n\n축제의 기원은 다양한 지역적 출처에서 찾을 수 있다. 민요 ‘마벨리 나두 바니덤 칼람(Maveli Naadu Vaanidum Kaalam)’에는 ‘마하발리’라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왕이 등장한다. 그의 현명한 통치 덕분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도둑질, 거짓말, 굶주림, 질투와 같은 나쁜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백성들은 삶은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신들에게 기도하거나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한다. 마하발리는 어느새 천상과 지상, 지하 삼계를 모두 통치하게 되었지만 이는 인드라(Indra) 신과 다른 신들을 격분시켰다.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비슈누(Vishnu) 신은 그의 다섯 번째 아바타인 ‘바마나(Vamana)’라는 이름의 브라만 난쟁이의 모습으로 마하발리 앞에 나타나 세 번의 걸음으로 밟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바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걸음에서, 그는 땅과 하늘과 지하 세계를 모두 뒤덮어 버렸다. 이를 본 마하발리는 세 번째 걸음을 위해 자신의 머리를 내어놓는다. 이 행동에 감명을 받은 비슈누는 마하발리 앞에 나타나 그를 축복하며 마하발리에게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년에 한 번 방문하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결과적으로, 마하발리 왕의 귀향을 오늘날 오남으로 기념하게 되었다.\n\n오남은 음식, 춤, 문화적 복식, 꽃 장식 등을 포함하는 정교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축제이다. 각 가정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농경 생활과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축제의 가장 인기 요소 중 하나는 음식이다. 오남 사디아(Onam Sadhya)는 스물여섯 가지 다른 음식들을 산지 재료로 준비한 코스 음식을 뜻한다. 음식 중에는 쌀밥, 아비알(Avial, 망고와 코코넛에 다양한 채소를 곁들여 조리한 음식), 올란(Olan), 삼바르(Sambhar), 라삼(Rasam), 바나나칩, 파파담(Pappadam), 그리고 최소한 2가지 이상의 파야삼(Payasam, 쌀, 밀 등과 우유와 설탕을 혼합해 만든 단 음료)이 있다. 이것들은 향신료의 땅이라고도 알려진 케랄라 주에서 준비된 음식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n\n축제의 또 다른 측면으로는 지역적이고 화려한 꽃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정교한 꽃 장식을 들 수 있다. 매일 푸깔람(Pookkalam, 꽃으로 원형의 문양을 만들어 바닥을 장식하는 것)이 만들어지고 축제 기간 동안 바담 발리(Vadam Vali, 줄다리기), 풀리 칼리(Puli Kali, 케랄라의 민속 예술), 발람 칼리(Valam Kali, 보트 경주)와 같은 다양한 놀이가 펼쳐진다.\n오남 축제는 케랄라의 문화 유산을 잘 반영하고 있다. 가족들은 여성용 카사부(Kasavu) 세트 사라와 남성용 문두(Mundu)와 같은 전통의상을 입는다. 축제 때는 새 옷을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선물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를 오나 코디(Ona Kodi)라고 부른다. 축제는 케랄라의 말라얄람력에 따른 새해를 시작하는 때로, 열정과 큰 에너지로 기념된다.\n\n사진 1 : 오남 푸칼람 © Yugaljoshi\n사진 2 : 오남 사디아 © YugaljoshiYear2021Nation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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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과 공동체 회복탄력성 관계에 대한 고찰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예측되거나 예측되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반드시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재해나 긴장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불리한 상황과 혼란을 다루는 사회적·생태학적 체계의 적응 능력이다.¹ 사회적·생태학적 체계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2003)에 기술된 무형유산 정의에 반영되어 있으며, 구전 전통과 표현물, 공연예술, 사회적 관습·의례·축제 행사,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과 관습, 전통적 공예 기술로 구성된 영역에서 뚜렷이 나타난다.Year2023Nation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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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연등회지난 4월 15일 보건복지부는 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를 약 2년 1개월 만의 해제됨을 밝혔다. 이에 올해부터는 많은 것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정상화될 예정이며 축제나 행사 또한 부활하는 분위기다.\n\n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연등회 또한 원래 매해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전부터 진행되는 행사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에는 정상적인 개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연등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연등회보존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는 정상적으로 행사를 개최할 것임을 밝혔다. 서울 조계사를 기준으로 올해 4월 5일부터 행사가 시작되었고 부처님오신날(올해 5월 8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n\n연등회란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불을 켜고 복을 비는 의식으로 신라 때 비롯되어, 고려 태조 때에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여지다가 현종 1년(1010)에 이월 보름날로 바뀌었다.”1.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되어있다. 연등회는 남북국시대부터 고려 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연등회는 궁중과 서민 모두를 아우르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역사적으로는 국가 행사로 치렀던 고려의 연등회가 사회적 기능이 가장 컸었고,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에서도 서민의 중요한 문화행사이자 축제로서 기능했다. 불교국가였던 신라와 고려의 것은 국가적·종교적 색채가 짙었다면, 유교 국가였던 조선의 것은 종교적 행사라는 측면보다 민간의 큰 행사라는 색채가 강해졌다. 오늘날에도 연등 행사는 대중들의 중요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아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시민의 축제가 되었다.2. 행사는 크게 아기 부처상을 목욕시키는 관불 의식, 연등 행렬, 법회 등으로 구성 되어있다.\n\n2020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린 ‘연등회, 한국의 등 축제’에 대해 유네스코에서 밝힌 무형문화유산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n\n“연등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가하는 축제다. 특히 연등 축제에서는 여성과 아동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가부장 문화가 한국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았지만, 연등회는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을 고양 시키는 기회로 작용한다. 전통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있어 연등회는 다양한 연등의 모양과 색상을 실험하며 그들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연등회는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등 축제는 일반적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역경이 닥친 시기에는 사회를 통합하고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4년 비극적인 세월호 사고로 온 나라가 충격을 받고 비탄에 잠겼을 때 미리 계획되었던 연등회 행사가 모두 취소되고 다음과 같은 새로운 주제가 발표되었다.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모아요.” 이는 연등회가 사회의 관심이나 시대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연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3.\n\n오늘날까지 전승되어온 연등회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대중들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해온 소중한 행사가 되었다. 지난 2020년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3년 만에 거리에 다시 등이 걸렸다. 2022년 봄에도 아직 걷히지 않은 코로나19의 어둠 속에서 처음 맞이하는 연등회 행사의 의미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시대의 정서와 생명의 가치를 밝혀온 연등회가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n\nnote \n1.\t⇑\t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n2.\t⇑\t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n3.\t⇑\t유네스코와 유산 https://heritage.unesco.or.kr/\n\n사진 1 : 2022년 연등회 © Republic of Korea, CC BY-SA 2.0, 변경사항: 사이즈, 레벨\n사진 2 : 연등회 행렬 사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공공누리 1유형\n사진 3 : 2001년 연등회 © Pravin Premkumar, CC BY 2.0, 변경사항: 사이즈, 명도Year2022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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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보호 활동을 통한 공동체 회복탄력성 강화기후 위기, 코로나19 대유행, 현세대가 직면한 경제, 사회, 기술 변화를 목도한 많은 이들은 개인, 공동체, 도시, 국가의 신속한 회복에 있어 위기 대응 능력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홍수나 산불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경제 위기로 인한 어려운 시기 등 재난이 발생하면 여러 공동체가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공동체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려면 위기 발생 시 문제 해결과 상호 지원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장기간 지속되는 위기관리에 있어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정부와 공공 부문은 변화를 겪고 있는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동체는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킴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사람들의 일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과 관점을 전수한다.Year2023Nation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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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차페이 무형유산 명장이 전하는 공중보건 메시지캄보디아에서는 무형유산을 이용하여 중요한 공중보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전통악기 차페이 당 벵(Chapei Dang Veng)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중 하나가 공동체에게 중요한 소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오늘날 해당 차페이 당 벵(Chapei Dang Veng)의 장인으로 여겨지는 콩 나이(Kong Nay)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n\n75세의 콩 나이는 차페이 당 벵의 몇 안 되는 대가로,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관련 안전 수칙들에 관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n\n‘차페이 당 벵’은 류트(차페이) 연주와 노래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 전통으로, 2016년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는 캄보디아 차페이 당 벵의 긴급보호를 위해 총 23만 달러 규모의 자금원조를 승인했다. 현재 두 명의 차페이 명장이 생존해 있지만, 노령으로 인해 활발한 연행이 힘든 상황이다. 캄보디아는 예술·교육 기관들과의 논의를 통해 해당 전통의 보호 계획을 수립했다. 여기에는 차페이 교육자 훈련, 청년 명장 육성 프로그램, 축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n\n영상: 캄보디안리빙아츠(Cambodian Living Arts)\n사진 1 : 불교행사에 쓰일 짜빼이 ⓒ 캐서린 그랜트\n사진 2 : 차페이 당 벵 연주 ⓒ 캄보디안 리빙아츠Year2020Nation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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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츠시마 만 해양 무형유산: 위협 완화 및 기회 확대일본 미야기 현의 마츠시마 만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연안 주민들과 어업협동조합 회원들이 보유한 해양 무형문화유산의 현 상황을 개괄적으로 보여준다.\n\n마츠시마 만은 적어도 조몬 중기(기원전 4000-2500)부터 사람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해양 자원을 사용한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정공원의 이름을 딴 마츠시마 만은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1690년 이곳을 방문한 시인 바쇼(Basho)에 의해 유명해졌다.그러나 오늘날 이 지역은 주변 육지의 높은 인구밀도와 해안에 밀집된 산업, 연안 공동체 내 인구학적 변화, 그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야기된 쓰나미의 충격으로 고통받고 있다.\n\n이러한 시련들로 인해 해양무형유산과 함께 공동체와 삶의 방식도 위험에 처했다. 무형유산이 사회적 결속과 포용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때, 무형문화유산의 소실은 그것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n회적 풍습과 의식, 축제는 현지 문화와 환경에 대한 공유된 이해를 강화함으로써 연안 공동체의 삶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두 개 공동체의 해양행사인 ‘미나토 마츠리\n(Minato Matsuri)’와 ‘하마 오본(Hama O-bon)’이 소개될 것이다.\n\n해양무형유산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회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고는 ‘어부-삼림(fisher-forests)’과 ‘사토-우미(sato-umi)’라는 지역적 개념을 살펴보고. 어부들의 지역 생태지식과 함께 회복과 지속가능성 목표를 지원하는 연안 공동체 활동의 사례들을 보여줄 것이다.Year2020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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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유대와 시련: 공동체 및 바다인으로 살기전통적인 해안 공동체는 해양지식을 이용해 조간대 해안, 맹그로브, 갯벌, 해안림, 산호초 등 다양한 생태학적 지위를 점하는 자원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태국어로 ‘바다인’을 의미하는 차오라이(Chao Lay), 즉 태국의 바다 유목민들은 섬과 해안지역에 일시적인 거주지를 만들어 살아왔던 토착민들이다. 태국 남부 지역에서 총 43개의 촌락을 이루고 있는 모켄족(Moken), 모클렌족(Moklen), 우락라워이족(Urak Rawoi)은 수 세기 동안 바다와 숲을 현명하게 활용했던 해양 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차오라이는 “물을 보고 바람을 알고, 하늘을 보고 별을 기억하는” 위대한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Kuain 2008). 지금도 일부 공동체에서는 해양지식과 기술이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다. 본 연구에서 살펴볼 사례는 태국 남부 푸켓 주의 라와이 해안 공동체이다. 차오라이의 두 부족인 우락라워이족과 모켄족은 수백 년 전부터 이 지역을 거주지로 선택했는데, 해안 근처의 얕은 물과 인근의 산호초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이 양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만(灣)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거주지로서뿐만 아니라 땅과 바다의 풍부한 자원 덕분에 수렵과 어업에도 매우 적합했다. 거주지 선택에 관한 지식은 매우 중요하며, 섬과 해안에 있는 차오라이 마을 대부분은 바람과 태풍으로부터 보호받는 만이나 해안에 위치해 있다. 담수는 주변에서 샘, 냇물, 연못의 형태로 쉽게 발견된다.Year2020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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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의하며존경하는 내빈 여러분, 참석자 여러분, 오늘 저는 2020 세계무형문화유산 포럼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n\n먼저 올해 포럼을 열기 위해 지치지 않고 일해주신 주최 측에 축하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와 함께 수년 동안 유네스코의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유네스코의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 협약에 대한 인식 증진을 위해 공동체와 대학, 그리고 NGO가 네트워킹과 지식교환을 하도록 지지해주었습니다. 이 포럼은 무형문화유산에서 중요한 핵심 주제에 관해 지역과 국제차원에서 대화와 협력을 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이 여러분에게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Year2020Nation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