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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ICH Elemen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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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야류 (水營野遊)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야류(들놀음)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해지던 오광대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동래·부산진 등에 전래된 것으로, 야류란 이름은 넓은 들판같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광대가 전문연예인에 의해 행해진 도시가면극이라면 야류는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수영야류는 정월 대보름에 산신령과 샘물, 그리고 최영 장군 묘에 제사를 지낸 후 달이 뜨기를 기다려 행해진다. 약 200년전 좌수영 수사의 직책을 맡았던 관리가 초계 밤마리(현재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패들을 불러다가 놀게 하였는데 부하들이 이를 보고 배운데서 시작된 것이라 전해진다. 놀이는 양반춤·영노춤·할미와 영감춤·사자춤의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이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길놀이를 한다. 놀이가 끝나면 가면을 한 곳에 모아 제사를 지내고 불태우면서 행운을 빈다. 등장인물은 수양반·둘째양반·셋째양반·넷째양반·종가도령·말뚝이·영노·할미·제대각시·사자·호랑이의 11명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적다. 양반에 대한 풍자와 처·첩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민중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야류하고는 달리 문둥이춤이 없는 대신 사자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영야류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탈놀음으로 제례의식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성 및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마당놀이이다.
South Korea -
살풀이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당이 나뿐 기운을 풀기 위해 추는 즉흥적인 춤을 말하며, ‘도살풀이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 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쓴 데서부터 살풀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 나타내기 위해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경기지방과 호남지방에서 계승된 춤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들의 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당들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되어 오늘날 한국춤의 대표로 정착하였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는 춤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큰 고전무용이다.
South Korea -
학연화대합설무 (鶴蓮花臺合設舞)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학연화대합설무는 조선 전기 궁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다음에 학무와 연화대무를 연이어 공연하는 종합적인 춤을 말한다. 학연화대합설무는 학모습의 탈을 쓰고 추는 학무와 연꽃에서 동기(童妓)가 태어나는 연화대무로 구성된다. 학연화대합설무는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세계를 표현한 독특한 춤으로 예술성이 높고,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을 간직하고 있다. 학무는 임금을 송축하기 위해 학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고려때부터 궁중의례에서 행해 왔으며, 새의 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연화대무는 두 여자 아이가 연꽃술로 태어났다가 왕의 덕망에 감격하여 춤과 노래로써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온몸에 학의 탈을 쓴 두 무용수가 춤을 추다가 미리 설치된 꽃봉우리 두 개를 부리로 쪼면, 연꽃이 벌어지며 여자 아이가 튀어나오고 학은 놀라서 뛰어 나간다. 그 후 두 여자아이가 추는 춤이 연화대무이다. 공연상 두 춤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오랜 세월 전승되어 왔다. 반주음악으로는 세령산, 삼현도드리, 타령이 학춤을 출 때 사용되며, 연화대무에서는 궁중음악만을 사용한다.
South Korea -
농악(農樂)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농악은 타악 합주(때때로 관악기가 포함되기도 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공연 예술 장르이다. 농악은 마을신과 농사신을 위한 제사, 액을 쫒고 복을 부르는 축원, 봄의 풍농 기원과 추수기의 풍년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 행사, 그리고 전문 농악패들에 의한 여흥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어 왔다. 마을의 흥겨운 행사치고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의 떠들썩한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농악 공연이 북돋는 흥겨운 기분, 즉 신명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의 장단은 흔히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이 많이 사용된다. 쇠와 가죽으로 음색을 내는 꽹과리와 장구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한편,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에 강세를 만들어준다. 소고를 연주하는 연행자들은 음악 연주보다는 춤에 더 치중한다. 농악 춤은 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춤과 함께 단체가 만드는 진짜기, 상모놀음 등이 포함된다.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이 재미난 촌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희가 진행되고, 버나돌리기나 어린 아이를 어른 연행자의 어깨 위에 태워 재주를 보여주는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된다. 농악은 기층민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연행되고 향유되지만 신명나는 공연을 보여주는 전문연희패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전문적인 레퍼토리는 타악 4중주에 해당하는 ‘사물놀이’와 넌버벌(non-verbal) 연극 ‘난타’와 같은 작품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런 시도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보다 광범한 청중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다.
South Korea 2014
ICH Materials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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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Indonesia -
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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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바지도르 카홋
바지도르 카홋은 자바섬 서쪽 지방 순다족의 민속춤 '케툭 틸루(Ketuk Tilu)'와 인도네시아의 국민 춤으로 불리는 '자이퐁간(Jaipongan)'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식민지 시대를 전후로 영욕을 거듭하며 현대에까지 명맥을 이어온 인도네시아 민속춤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n\n20세기 초, 자바섬 서쪽에서는 귀족학교와 무용 클래스를 중심으로 탈춤인 토펭(Topeng)과 왕궁의 사교댄스인 태윱(Tayub, 혹은 카부파텐 Kabupaten)을 조합한 춤이 퍼져 나갔다. 반면 마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춤은 식민지 지배 계층과 귀족들에 의해 외설스러운 춤으로 폄훼 되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각 지방의 민속춤은 케툭 틸루라는 장르로 묶였다. 케툭 틸루는 자바섬의 전통 타악기인 수평으로 매달린 세 개의 징(gong)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인 가믈란(Gamelan)을 구성하는 주요 악기이다. 당시 케툭 틸루 그룹은 유랑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기엔 롱겅(ronggeng)이라 불리는 무용수이자 가수인 여성들 혹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인 여성 복장 도착자들 그리고 가믈란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 케툭 틸루의 관객들은 주로 하층민들이었고, 종종 흥에 겨운 나머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가수 혹은 무용수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케툭 틸루는 주로 결혼식, 혹은 춤 대회 등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전 행사로 공연했다.\n\n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귀족들은 자바섬 서쪽 지방의 춤을 소위 ‘클래식 댄스’로 규정하고 엘리트들을 위한 상위 문화의 하나로서 국가의 전통 춤으로 육성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도 클래식 댄스를 배워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민속춤인 케툭 틸루는 인정할 가치가 없는 저급한 춤으로 취급되었다.\n\n쇠퇴하던 케툭틸루는 서양음악이 금지되었던 70년대 말, 서 자바섬의 수도인 반둥(Bandung) 출신의 안무가 Gugum Gumbia Tritasonjaya의 노력으로 극적인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자바섬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케툭 틸루를 발견한 뒤 간단한 동작 속에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케툭 틸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1979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케툭 틸루와 수마트라 섬 서쪽의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Pencak silat)의 동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자이퐁간을 선보였다. 공(gong)의 연주에 맞춰 몸 전체와 어깨를 절도 있게 끊어주는 동작, 육감적인 엉덩이의 움직임과 손과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특징인 자이퐁간 춤은 클래식 댄스의 절제하는 동작과 큰 대조를 보였다. 또한 춤에 맞춰 만들어진 자이퐁간 음악은 정치, 사회, 성을 망라한 다양한 주제의 노랫말로 대중들을 열광시키며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전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n\n바지도르 카홋은 케툭 틸루부터 자이퐁간으로 이어지는 민속춤을 현대의 감성으로 발전시킨 춤이다. 자이퐁간과 마찬가지로 흔히 4명에서 8명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들이 춘다. 엉덩이와, 팔, 어깨, 머리 그리고 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발동작을 함께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밝은 색의 순다족 전통 의상인 케바야(kebaya)를 입고 스카프와 부채 등을 소품으로 활용한다.\n\n4~8명의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며 부채를 사용한다.\n\n출연자: 마와르 부다야 댄스 아틀리에\n예술감독: 마리아 소피아 트리마와산티\n안무가: Maria Sofia Trimawarsanti
Indonesia Aug 27-28, 2017 -
인도네시아 - 판지 토팽
토펭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이다. 토펭(Topeng)'은 인도네시아어로 ‘나무 가면’을 뜻하는 말로, 어원인 'tapel'은 '억누르다' 혹은 '얼굴을 눌러서 덮은 것' 또는 '나무의 뿌리'를 의미한다.\n\n‘판지 토펭’은 토펭 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바 섬에서 전승되어온 ‘판지(Panji)’ 연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판지 토펭은 12세기 경 카드리 왕국(Kadri, 혹은 Kediri Kingdom)의 왕자였던 판지가 결혼식 전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신부 키라나 공주를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판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며 동남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 특히 서 자바섬의 사이어본(Cirebon)과 동 자바섬의 마랑(Malang) 지역에서 연행하는 토펭 춤을 비롯한 여러 인도네시아 전통 춤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n\n인도네시아의 토펭 춤은 동 자바섬의 마랑, 발리,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 마두라 섬, 자바 북쪽 해안의 치레본 등 다섯 개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오늘날의 토펭 춤은 15세기 자바섬과 발리 섬에 일반적으로 남아있던 토펭 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 무용극은 힌두교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칼리만탄 섬의 토착 부족인 다약족은 추수 감사절 축제에서 추는 후독(Hudoq) 춤에서 보듯 자연의 힘과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토펭 춤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추고 있다. 힌두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hbarata) 같은 서사시들이 토펭 무용극의 주제가 되었다.\n\n판지 토펭 춤은 흰색 가면을 쓴 무용수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마치 걸어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은 판지 토펭의 정수로 꼽힌다. 무용수는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서사시에 등장하는 왕에 대한 우화, 영웅담, 신화들을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토펭 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세기 힌두교 왕국 마자파힛(Majapahit)의 왕인 ‘하얌 우르크(Hayam Wuruk, 1334~1389)’를 노래한 서사시 ‘나가라크레타가마(Nāgarakrĕtāga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자 왕국을 순행(巡幸)하던 중 왕이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황금빛 가면을 쓰고 토펭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1365년에 기록된 ‘나가라크레타가마’의 필사본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n\n출연자: 다디조노 달마완(Dadijono Darmawan)\n예술감독: 다디조노 달마완\n안무가: 다디조노 달마완
Indonesia Nov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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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고등교육 네트워크(APHEN-ICH) 국제세미나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다양성과 동질성
여러 국가에 걸쳐 분포하는 무형유산의 기본적 특성과 문화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형유산은 국경을 초월한 공유성을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과 확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경계를 국경과 동일시하는 근대 국민국가 체계로의 전환은 ‘국가 내 문화’ 또는 ‘경계 내 문화’라는 개념을 형성하였으며, 문화의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n\n문화의 배타적 소유권 개념은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도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문화유산과 문화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갈등이 과도한 등재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 분위기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유네스코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지역 협력을 증진하며 국제 보호 활동이라는 협약의 취지를 되살리는 동시에, 국가 간 갈등에 대한 예방과 이미 발생한 갈등의 해결방안으로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유 무형유산의 공동등재를 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공동등재를 강조하며, 문화소유권으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이행지침을 개정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한 연계성이 지역적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n\n이와 더불어 당사국은 소지역 및 지역적 수준에서 협력하도록 관련 공동체, 전문가, 전문센터, 연구소가 특히 그들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하여 연계성을 발전시키도록 장려되고 있다. 특히 2018년 11월 모리셔스에서 개최된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씨름이 남북 공동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무형유산이 민족 간 문화적 이해와 연대를 증진하고 평화 구축에 이바지함을 보여준다. 비단 공동등재된 무형유산뿐만 아니라 공유성이 무형유산의 근간임을 인정할 때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국가 간 평화 달성의 초석이 됨을 인지해야 한다.\n\n따라서 본 세미나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동질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옻칠 등 아태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는 비슷하지만 다양한 무형유산을 살펴보며 무형유산이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하고, 포괄적 국제협력과 평화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South Korea 2021 -
네팔의 민속무용
DVD1_네팔의 민속무용\n\n네팔의 공동체 사람들은 다양한 민속무용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실 민속무용은 시골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의 노래와 춤에서는 종교적 영향도 쉽게 발견되는데, 주로 인간과 가축의 행복 및 순조로운 날씨와 풍작에 관여하는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래하고 춤춘다. 네팔은 매우 다양한 지형적 특징만큼 문화적 특성도 매우 다양하다. 민요와 민속무용은 문화와 카스트, 계절, 지형적 특징에 따라 다른 네팔의 민속무용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셰르파는 테라이 지역에 사는 타루 족과 서로 다른 노래와 춤을 즐긴다. 마찬가지로 봄의 노래와 춤은 기쁨을 표현하지만 겨울의 노래와 춤은 슬픔을 표현한다. 본 DVD에서는 네팔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토착 공동체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일상적으로 연행되는 민속무용들을 소개한다.
Nepa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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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sma Yo‘limni (내 길을 막지 마세요), 라파르 / 라일로혼 하키모바 (Laylokhon Khakimova)
민속 창작의 고대 장르 중 하나인 라파르 공연예술은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파르 노래는 유명한 예술인들에 의해 명절, 민속 축제, 그리고 결혼식 날 저녁 신부집에서 진행되는 “여자들의 저녁”, “여자들의 파티”, “라파르의 밤”이라고 불리는 연회에서 연행되었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양편으로 나란히 서서, 낭만적인 가잘-바이트(g‘azal-bayt)를 부른다.\n라파르 노래를 통해 남녀는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맹세하며 가슴 속 한恨을 음악 없이, 특정한 음조로 노래하였다. 만일 라파르를 부르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음에 들게되면,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서로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보통 꽃을 건네고, 여자는 조각보, 손수건, 향수, 등을 선물하였다.
Uzbekistan 2015 -
Yorim Kelarmikan(나의 임이 올까나), 라파르 / 무합밧 라흐모노바 (Mukhabbat Rakhmonova)
민속 창작의 고대 장르 중 하나인 라파르 공연예술은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파르 노래는 유명한 예술인들에 의해 명절, 민속 축제, 그리고 결혼식 날 저녁 신부집에서 진행되는 “여자들의 저녁”, “여자들의 파티”, “라파르의 밤”이라고 불리는 연회에서 연행되었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양편으로 나란히 서서, 낭만적인 가잘-바이트(g‘azal-bayt)를 부른다.\n라파르 노래를 통해 남녀는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맹세하며 가슴 속 한恨을 음악 없이, 특정한 음조로 노래하였다. 만일 라파르를 부르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음에 들게되면,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서로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보통 꽃을 건네고, 여자는 조각보, 손수건, 향수, 등을 선물하였다.
Uzbekist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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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
CD7_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n\n까 후에(Ca Hu?; 후에 노래 부르기)는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Hu?)에서 연행되는 독특한 전통 실내악이다. 까 후에는 궁중음악에서 유래했다. “응우옌 왕들과 대비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 있었다. 1” 까 후에는 처음에 왕족, 고위 관료, 부자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었다. 이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까 후에는 점점 다양한 후에 민속음악 양식의 영향을 받게 됐다.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는 예를 들어 ‘반 응으(b?n Ng?) 10곡’ 또는 ‘탑 투 리엔 호안(Th?p th? lien hoan)’이라고도 하는 ‘반 따우(b?n Tau) 10곡’이 제물 봉헌을 위한 의식이나 특별 행사에서 궁중 악사들에 의해 궁중에서 연주되는 등 다시 궁중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까 후에는 지도층과 일반 대중의 예술 작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음률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속음악과 궁중음악의 정수를 하나로 섞어 놓았다. 이 때문에 까 후에는 과거에 새해맞이 의식 또는 승진 축하나 개업 행사 등 기쁜 일이 있을 때 고위 관료, 지도층, 후에 주민들의 집에서 연주됐다.\n\n과거에는 지도층, 고위 관료, 학자나 아름답고 뜻 깊은 노랫말을 지을 수 있는 사람만 까 후에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면서 연주 음악과 노래를 통해 생각을 공유했다. 한 사람의 노래와 악기 연주는 다른 사람의 노래와 작곡에 영감을 주는 형식이었다. 까 후에 참여자들은 또한 관객이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재능을 존경하며 즐겼다. 최근에는 전통 까 후에 이외에 무대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가 연주된다.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는 상업 음악처럼 작곡가, 연행자, 관중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둔다. 실내악 까 후에의 특징인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은 이제 개인의 집에서 연주되는 까 후에에만 남아 있다.
Viet Nam 2015 -
베트남 중부 고산지대 일부 소수민족의 민속노래
CD2_베트남 중부 고산지대 일부 소수민족의 민속노래\n\n베트남 중부 고산지대는 잘라이(Gia Lai), 꼰뚬(Kon Tum), 닥락(đ?c L?c), 닥농(đ?c Nong), 람동(Lam đ?ng) 등 5개 성을 포함한다. 이 지대는 몬크메르어(Mon-Khmer)와 말레이-폴리네시아어(Malayo-Polinesian) 사용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바나족(Ba na), 쓰당족(Xe đ?ng), 므능족(Mnong), 쓰띠엥족(Xtieng)은 몬크메르어를 사용하고 에데족(E đe)과 자라이족(Gia rai) 및 라글라이족(Raglai)은 말레이-폴리네시아어를 사용한다. 중부 고산지대 사람들은 민속음악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음악은 종교성 축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징 같은 악기는 축제에서 사용된 뒤에 보관된다. 이러한 악기는 신성성이 있다고 인식돼 가족의 번영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종교음악과 더불어 이곳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민속음악도 사랑 노래, 고원 노래, 종족공동체 노래 등 풍부하다. 중부 고산지대에 사는 토착민들은 음악 재능이 타고났다. 그들은 누구나 가수와 악기연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나무, 나뭇잎, 돌 등을 재료로 하여 능숙하게 악기를 만들 수 있으며,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고 깔끔하게 음악 연주를 할 수 있다. 이 CD에서는 베트남 중부 고산지대 소수민족이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민속음악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수록된 음악은 1977~1978년(트랙 1, 5, 11)과 1997~1998년(나머지 트랙)에 에데족, 자라이족, 쓰당족, 므능족, 바나족 등 이 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지역 민속음악 예인들이 연행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
Viet Na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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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인들의 전통 멜로디(2014-2015 우즈베키스탄 순수예술연구소 소장 자료 복원 및 디지털화 사업)
2015년,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무형유산 아날로그 자료 복원 및 디지털화 협력사업의 일환으로서 유네스코우즈베키스탄위원회,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산하 예술 연구소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민속음악유산 음원 CD 세트, 「우즈베키스탄의 멜로디(Melodies from Uzbekistan)」를 발간했습니다.\n\n이 음원 선집은 우즈베키스탄 국립학술원 산하 예술연구소의 오래된 오디오 녹음 자료들을 현재 사용되는 매체에 적합한 포맷으로 변환하여 발간한 것입니다. 선집에 담긴 음원들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즈베키스탄과 국경 지역에서 현장 수집된 민속 음악 자료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민속 음악입니다. 총 여덟 장의 CD는 노동, 가축 사육, 의식용 노래 등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래 유산과 두타르(Dutor), 가지르 나이(G’ajir Nay)와 같은 각종 전통 현악기, 관악기 등으로 연주한 기악 외에도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산인 마콤(Maqom)이나 구전예술전통인 도스톤(Doston) 등을 담고 있습니다.\n\n중앙아시아의 이국적인 전통 음악이 낯설게만 들릴 수도 있지만, 여덟 장의 음원 CD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민속 음악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설자료(한국어, 영어, 우즈베키스탄어)가 포함되어 있어 국내외 대중들 역시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n우즈베키스탄의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적 특징을 모두 들려주는 CD 선집은 앞으로 무형유산 교육 및 홍보 자료로서 다양한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Uzbekistan 2015 -
페르가나 계곡의 무형유산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주, 안디잔 주, 나망간 주를 아우르는 페르가나 계곡 지대에는 구전 전통, 공연 예술, 전통 의례와 축제, 그리고 전통 공예와 같은 빼어난 무형유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점점 잊혀져가고 있습니다.\n\n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4개국은 2011년부터 중앙아시아-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의 협력 사업으로 ‘온라인 툴을 활용한 중앙아시아 무형유산 목록작성 지원 3개년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본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무형유산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이를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n\n우즈베키스탄에서는 민속예술연구센터가 유네스코우즈베키스탄위원회와의 협력 하에 본 3개년 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친 현지조사를 통해 페르가나 계곡 지역, 자라프샨과 우즈베키스탄 남부 지역, 나보이, 부하라, 코레즘 주와 카라칼팍스탄공화국 등지의 무형유산 종목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n\n페르가나 계곡에서의 1차 현지조사가 완료된 시점인 2012년, 우즈베키스탄과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수집된 영상, 음원, 사진, 보유자 인터뷰 자료 중에서 일부를 선정하여 10장의 DVD/CD 세트로 엮었습니다. 또한 보다 많은 이들이 해당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영어, 우즈벡어, 한국어 해설집을 제작하여 선집과 함께 배포하였습니다.\n\n페르가나 계곡은 타지크, 위구르, 투르크 족 등 각기 다른 공동체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각자의 고유한 전통들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작된 우즈베키스탄의 무형유산 중 하나인 ‘카타 아슐라(Katta Ashula)’는 미술과 노래, 반주, 그리고 서사시를 통합한 독창적인 민요의 한 종류로, 이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n\n자료들을 디지털화 시키고, 배포하여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유산을 알리려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대 간 전수가 단절되어 사라져가는 무형유산들을 보호하고 전문가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 문화 간 이해와 대화가 증진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Uzbekist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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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필수 도구로서 디지털 기록화 국제세미나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디지털헤리티지랩과 공동으로 2019년 7월 20일 ‘미래를 향한 과거 –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필수 도구로서 디지털 기록화 국제세미나를 주최했습니다.\n\n세미나는 무형유산의 아카이빙과 시각화를 다룬 1세션과 유형유산의 디지털 기록화 방안을 다룬 2세션, 그리고 문화유산 디지털 데이터 구축을 둘러싼 한국의 도전과제를 다룬 3세션으로 진행됐으며, 본 자료집에는 세미나에서 발표된 원고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South Korea -
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27 (잔치 음식 '상서로운 날의 특별한 음식')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27권의 테마는 「잔치 음식 '상서로운 날의 특별한 음식'」입니다.
South Kore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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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작성몽골의 다양한 구전전통과 음악, 무용 등의 공연예술, 관습, 사회 관습, 축제는 영러 패턴과 소리를 통해 몽골인들의 자연 및 우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사민요와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 민속예술을 포함한 몽고로 무형문화유산은 자연에 대한 총체적인 보호체계를 구축하여 왔다.Year2009Nation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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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작성 노력캄보디아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작성 노력은 공연예술, 음악, 수공예, 언어를 포함하는 캄보디아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목표는 이들 각 형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아니라, 각 종목에 관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모든 알려진 무형문화유산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제시하는 데 있다.Year2010Nation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