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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ICH Elemen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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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장 (網巾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망건은 갓을 쓰기 전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총으로 엮어 만든 일종의 머리띠이다. 망건은 윗부분을 졸라매는 당(살춤), 아랫부분을 졸라매는 편자(선단), 그믈처럼 얽혀져 이마부분을 감싸는 앞, 뒤통수를 싸매는 뒤로 구성된다. 이 밖에 계급을 표시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관자와 풍잠을 메달기도 한다. 망건의 재료로는 말의 꼬리털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하며, 만드는 과정은 편자짜기에서 앞, 뒤뜨기로 이어지며 당을 걸고 망건을 삶아서 부드럽게 한 다음 염색을 하고 조립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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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장 (宕巾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탕건은 남자들이 갓을 쓸 때 받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사모(紗帽)나 갓 대신 평상시 집안에서 쓰며 말총이나 쇠꼬리털로 만든다. 이러한 탕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탕건장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자가 평상시에 관을 대신하여 썼고, 속칭 ‘감투’라고도 하여 벼슬에 오르는 것을 일컫는 ‘감투쓴다’는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탕건은 우리나라의 말총이 대부분 제주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탕건은 홑탕건과 겹탕건, 바둑탕건으로 분류된다. 모두 형태는 같으나 겹으로 또는 2중, 3중으로 엮어 나가는 방법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바둑탕건은 사각무늬를 놓은 것인데, 이는 탕건이 독립된 모자 구실을 함에 따라 장식화된 것이다.
South Korea -
갓일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갓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중의 하나로 원래는 햇볕,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모자였으나 주로 양반의 사회적인 신분을 반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갓은 넓은 의미로 방갓형과 패랭이형 모두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흑립·칠립·평립이라고 부르며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뉜다.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갓 대우 부분을 말꼬리털 또는 목덜미털을 사용해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서 레코드판처럼 둥글게 얽어내는 과정을 말하며, 입자는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세 가지 과정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따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서 필수품목의 하나였던 갓은 의복의 변화와 단발령 이후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통영, 예천, 제주 등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South Korea -
나전장 (螺鈿匠)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무늬가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오려서 옻칠로 붙이는 기술이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은,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자개를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자개를 문질러 얇게 만들어 국화, 대나무, 거북이 등 각종 도안 문양을 만드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나전 무늬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무늬가, 조선 중기에는 화조·쌍학·포도· 사군자 등의 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이다. 자개의 재료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아름답고 우수하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South Korea
ICH Materials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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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15 (뱀을 테마로 하는 구전 설화와 관습)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15권의 테마는 「뱀을 테마로 하는 구전 설화와 관습」입니다.
South Korea 2013 -
2013 무형유산 정보화와 지적재산권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설립을 위한 한-유네스코 협정은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정보 센터의 기능으로서 “무형문화유산 보급을 위하여 축적된 정보와 데이터 활용, 정보 및 홍보 자료의 생산 및 출판, 기록 및 정보 자료에 포함된 무형문화유산 실연자 및 창작자의 지적재산권 보호 촉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센터는 지난 몇 년간 무형유산 정보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각국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지재권 관련 쟁점과 사례, 과제 등을 탐색해 왔습니다. 금년에 와서는 무형유산 정보의 지재권 쟁점에 대한 실질적이면서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고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무형유산 정보의 지재권에 관한 연구·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연구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 나온 여섯 편의 논문을 실었습니다. \n\n세부적으로 1)무형유산 정보의 지재권 보호에 관한 국제동향, 2)무형유산의 보호 및 활용에 관한 법적 쟁점, 3)무형유산정보의 특성과 관련 지재권 정책 방향, 4)이치피디아 사례 속 지재권 주요 쟁점과 해법, 5)국가기록원의 민간기록물 정보관리 체계와 저작권 대응, 6)영국도서관의 민족악 기록물 온라인 활용 모범 사례에 대한 연구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South Korea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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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정부간위원회 특집 자연의 섬 ‘제주’와 ‘제주인’의 지혜제주도를 처음 온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있다. 바로 검은 돌이다. 제주는 화산섬으로 온통 돌투성이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내뿜은 화산탄들이 흩어져 제주의 모든 땅들을 뒤덮고 있다. 지금도 밭에 가면 흔하게 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하지만 13세기부터 제주 사람들은 밭에 흩어진 쓸모없는 돌들을 모아 밭의 경계에 돌담을 두르고 경작지를 확보하였다. 현재 그 길이가 22,100Km에 이른다.\n\n이 돌들은 얼기설기 쌓여 있어 대충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제주인의 지혜가 숨어있다. 그 열쇠는 바로 바람이다. 제주는 여름에 불어오는 태풍은 물론이고 4계절 내내 강한 바람이 분다. 빈틈 없이 촘촘히 돌담을 쌓는다면 제주 사람들은 매일 들에 나가 넘어진 돌을 다시 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멍이 난 울퉁불퉁한 제주의 돌담은 바람의 힘을 떨어뜨리고 통과시킨다. 삶에서 얻은 지혜이다.\n\n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이다. 탐라의 시작과 관련된 이야기로는 땅에서 솟아난 세 신인(神人)이 탐라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이곳은 성스럽게 여겨져 ‘삼성혈’이라 불린다. 이는 한국 본토의 고대 건국신화가 하늘에서 알로 태어난 것과는 달리 땅에서 솟아난 것으로 문화적 원형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n\n제주도에는 1만8천의 신이 있다. 제주도민들은 세상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거친 바람과 물이 고이지 않는 척박한 화산 땅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던 제주도민들은 거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기 위해 신을 찾았던 것이다.\n\n제주의 마을에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들의 거처인 ‘본향당’들이 있다. 이곳엔 ‘심방’이라 불리는 무당이 있다. 이들은 제주민들을 신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해녀들과 어부들을 위해 음력 2월 영등굿이 진행된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으로 파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해녀들과 어부들에겐 바다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신이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는 이 기간 동안 30여 곳에서 바다의 신을 위한 의례를 펼친다.\n\n제주에는 여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이들은 다른 나라의 여신과 달리 남신들에게 기대거나 속박되지 않는다. 거대한 거인으로 치마폭에 흙을 날라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 생명을 잉태시키는 ‘삼승할망’, 농업을 관장하는 ‘자청비’ 등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제주여성들의 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유교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에 나타나는 남자 중심의 사회와는 달리 제주도의 여성들은 자존감이 매우 높다. 경제활동도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n\n그 대표적인 것이 제주해녀이다. 작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된 11차 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는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여성 중심의 사회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화산섬으로 물이 고이지 않아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제주도에서 땅이 아닌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던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해녀가 되었으며 혼자가 아닌 다 같이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n\n제주의 자연은 척박하며 사람이 살아가기엔 모자란 땅이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이를 이용하여 살아왔다. 그 곳엔 1만8천의 신들이 있고 이웃이 있다. 이것이 제주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온 힘이다.\n\n사진 : Jeju haenyeo (female divers) crossing low stone walls to get to the sea © Jeju Haenyeo MuseumYear2017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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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빚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목록에 한국 전통주 막걸리와 그와 관련된 문화를 새로이 등재했다. 등재에는 유백색의 가벼운 발포성 막걸리를 빚는 기술과 막걸리의 나눔과 관련된 문화적 관습을 통합하여 포함하고 있다. 막걸리는 쌀밥을 짓고 물과 누룩(이스트와 천연 효모가 함유된 발효제)에 섞어 발효시켜 며칠 뒤 이를 체에 걸러 끓이는 방식이다. 막걸리에서 ‘막’은 ‘지금’, ‘바로 그 때’, 걸리는 ‘걸러내다’는 의미이다. 순 우리말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이름 자체가 음료를 만드는 방법과 그 특성을 드러낸다.\n\n막걸리는 쌀 등 곡물로 빚은 술로, 한반도에 농경이 도입된 것과 관련하여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삼국시대의 역사서에 오늘날의 막걸리로 추정되는 미온, 지주, 료예와 같은 용어가 등장한다. 백주와 막걸리를 의미하는 용어는 동국이상국집 등의 고려시대 문학에도 등장한다. 춘향전, 광재물보(백과사전) 등 조선시대의 책에는 ‘목걸리’나 막걸리에 대해 언급된다.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 요리책에는 막걸리처럼 탁주로 먹었을 술 레시피가 담겨있다.\n\n막걸리는 쌀과 누룩만 있으면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가격이 저렴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는 대표적인 술로 자리잡았다. 막걸리는 노동의 계절 내내 농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한국의 소작농들은 “같은 일당이면 가장 맛있는 막걸리를 제공하는 집의 일손을 돕겠다”고 말하곤 했다.\n\n막걸리는 제사, 축하, 애도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기도 했다. 막걸리를 제주로 사용하는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유백색 막걸리는 건물의 준공, 신차 구입, 개업 등을 기념하는 많은 현대식 행사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n\n요컨대 막걸리를 빚고 나누는 전통은 위와 같은 이유로 국가무형문화재 목록에 등재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 역사성은 문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으며 역사, 식품과학, 민속연구와 같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광범위한 농가의 노래, 민담, 문학작품과의 연관성도 찾아볼 수 있다.\n\n막걸리의 등재와 배경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의 링크를 통해 더욱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n\n출처: http://english.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79559&bbsId=BBSMSTR_1200&pageIndex=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n\n사진 : 막걸리. 공개 도메인.Year2021Nation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