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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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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의 숨비소리길, 삶, 신앙“숨비소리는 고통의 소리이자 생명의 소리입니다.” 평생을 해녀로 살았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제주 토박이인 김윤복씨가 한 이야기다.\n\n‘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는 깊게는 수심 20미터까지 해녀들이 물질을 하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소리다. 김씨는 어린 시절 물질과 밭일로 바빴던 어머니를 위해 새벽 도시락 배달을 하러 불턱을 찾곤 했다고 한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이 끝난 후 불을 피워 몸을 녹이며 정보를 교환하고 가정 대소사를 나누던 곳으로,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만든 작은 생활문화 공간이다. 그곳에서 어린 김씨는 어머니가 구워준 미역귀를 아주 달게 먹었다고 한다. “새벽 일찍 불턱으로 가는 길이 그때는 그렇게 귀찮았는데, 지금은 한 없이 그리워집니다.”\n\n지난 5월 25일 제주해녀박물관이 기획한 ‘해녀를 따라 걷다’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푸르고 투명한 너른 바다, 청명한 하늘이 제주를 걷는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했다. 필자를 비롯한 참가자 20여명은 제주에서 해녀 수가 280명으로 가장 많다는 세화리의 트레킹 코스인 ‘숨비소리길’을 김씨를 따라 한 시간 반 가량 걸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한창 자란 우뭇가사리와 이를 캐서 땅 위에 말리고 있는 모습, 해녀와 어부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바닷가에 지어진 신당, 땅 속으로 스며든 빗물이 해안가에 솟아올라 마을 식수원이 되는 ‘용천수’, 화산활동으로 지천에 깔린 현무암 돌을 쌓아 밭의 경계를 만든 밭담, 그리고 불턱을 만났다.\n\n'숨비소리길’은 해녀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길이었다. 해녀들은 5월까지 우뭇가사리, 미역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을 채취하다가도, 6월부터는 산란철을 맞은 소라나 전복 등을 캐지 않는 금채기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녀들이 일손을 놓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물질뿐 아니라, 밭일까지 도맡은 해녀들은 8월까지 금채기 동안 당근, 감자, 무 등을 파종하고 겨울부터 봄까지 수확한다.\n\n현재 제주 전역에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신당이 75곳, 불턱이 35곳 남아 있다. 1700년대에는 당 500곳과 절 500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해녀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그 수(현재 4300명)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해녀 삶의 터전인 바다도 예전 같지 않다. 육지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바다 환경의 변화를 제주 토박이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다. 김씨는 “1940~50년대만 해도 바닷가에서 소라와 물고기를 만나는 일은 아주 흔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말했다.\n\n한편,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제주 해녀문화는 독특한 공동체적 생활방식과 생태주의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이후 해녀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나 프로그램들도 늘어나고 있다. 해녀들은 일터이자 삶터인 바다 생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무사히 물질 할 수 있도록 소원하며, 끈끈한 연대를 형성해 왔다. 이런 해녀 문화를 보호하고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제주에는 해녀의 조업활동, 생활모습 그리고 전통적으로 이어온 무속신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전과 예술전시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n\n사진 1 : 제주 산지천갤러리에서 전시된 해녀 잠수굿 관련 고(故) 김수남 작가의 사진들 ⓒ 오진희\n사진 2 : 제주 세화리 해변의 불턱 ⓒ 오진희Year2019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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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여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전통사회에서 제주는 한반도와 남해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화산섬이라는 자연적인 특징을 토대로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매년 음력 2월, 제주 전역에서는 바다의 평온과 풍작,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한국의 세시풍속 중 하나인 ‘굿’을 지낸다. 해녀들과 선주들은 신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무당들은 신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바람의 여신(영등신), 용왕, 산신 등 자연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바다가 옛 섬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담아내는 제주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다.\n\n“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마을의 여러 수호신과 바다의 용왕, 선조와 더불어 바람의 여신, 영등신(영등할망)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영등신은 제주에서 신화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외방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돌아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날씨를 관장하고, 떠날 때에는 땅에는 다음 해에 수확할 곡식의 씨를, 바다에는 해초와 해산물의 씨를 뿌린다고 전해진다. 영등신은 바다를 휘저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바닷물을 순환시켜 해조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이 신화는 삶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공간이기도 한 바다에 대한 섬 주민들의 인식을 잘 반영한다.\n\n“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 《동국세시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등굿이 오랫동안 전승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들이 유산의 진정한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삶의 일부인 바다에서 얻은 해양 자원으로 제사에 쓰일 음식을 마련하며 해녀들과 선주들은 굿을 이끄는 무당과 함께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을 주관하는 하나의 주체로 전통을 계승하였다. 오랜 시간 제주도 주민들의 삶 속에서 전래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1980년 안사인 심방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게 되었다.\n\n“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산신을 모시는 제사와 영등을 모시는 제사가 ‘영등굿’이라는 하나의 무속 제례로 결합한 제주도만의 전통이다. 매년 음력 2월 1일이 되면 영등굿이 치러지는 마을의 칠머리당에서는 영등환영제로 영등신을 맞이한다. 마을 주민들은 영등신, 마을의 수호신, 용왕에게 제사를 드리며 풍요로운 한 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리고, 2월 14일, 영등송별제를 지내 여러 신을 무사히 돌려보내며 제례를 마무리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제주 사람들의 자연관과 민속신앙의 소산으로 전승되어온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독특한 해녀 신앙과 민속신앙의 결합을 보이는 국내 유일의 해녀 굿으로 학술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n\n현대화로 민속신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발달하는 가운데에도, 제주도 사람들에게 “칠머리당 영등굿”은 매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연의 흐름과 함께했던 선조들의 삶을 잘 담아낸 의례이자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체감과 유대감을 길러주는 중요한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제주도의 선조들은 이런 바람을 단순히 두려워하고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닌 풍부한 자원이라는 축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제주 사람들의 자연관은 환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지침이 되리라 생각한다.\n\n사진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 공공누리 제1유형, 출처: 문화재정보Year2022Nation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