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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교육
ICH Element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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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택견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택견은 유연하고 율동적인 춤과 같은 동작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한국의 전통 무술이다. 천천히 꿈틀거리고 비트는 유연하고 곡선적인 동작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택견이 춤인지 무술인지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수자에 내재된 에너지는 엄청난 유연성과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택견은 보기에는 정적이고 품위 있으나 근본적으로 활력 있으며 심지어 치명적이다. 택견은 주도권을 장악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상대를 배려할 것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무술이다. 택견은 공격보다는 수비 기술을 더 많이 가르친다. 숙련된 택견 전수자는 부드럽고 물결치는 듯한 움직임으로 신속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고수는 상해를 입히지 않고도 상대를 물러나게 하는 법을 안다. 이러한 점은 전투 스포츠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택견은 이 모두를 가능케 한다. 택견은 자신보다 상대를, 개인보다 집단을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경이로운 스포츠이다. 동작은 직선적이고 뻣뻣하기보다는 부드럽고 곡선을 그리듯 하지만, 전수자를 천천히 그러나 강력히 유도하는 힘이 있다. 숙련된 택견 전수자의 우아한 몸놀림은 한 마리의 학 같지만, 탄력적인 공격 기술은 매와 같이 빠르고 강력하다. 택견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 곡선을 그리는 듯한 움직임이 특징이어서 외적으로는 부드러우나 내적으로는 강한 무술이다. 둘째, 우아함과 품위를 강조하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무술이다. 셋째, 걸고 차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공격과 방어의 조화를 이루는 실질적이고 통합된 무술이다.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지만, 택견은 모든 가능한 전투 방법을 이용하며 다양한 공격과 방어 기술을 강조하는 효과적인 무술이다. 택견은 한국 문화의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인 합일과 온전함을 대표한다. 택견은 삼국 시대(57 B.C. - A.D. 676) 이전부터 행해졌다고 믿어진다. 조선 (1392-1910)에서 민중을 포함한 넓은 대중들 사이에서 행해졌다. 택견의 기본 정신은 '진실성'이다. 택견은 청렴을 지키고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의 학자들의 생각을 내포하고 있는 무예이다. 현재, 한국택견협회는 택견의 전승과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에 위치한 85개의 택견 교육 센터는 택견 전승자의 주요 활동지이며, 이러한 센터 덕분에 한국인들은 쉽게 택견을 접할 수 있다.
South Korea 2011 -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수천 년 동안 쌀농사를 지어온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은 유럽의 밀농사의 문화와 다른 쌀농사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쌀농사 문화는 한국인의 생활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며, 강강술래는 이 같은 문화에서 발생한 세시풍속이다. 강강술래는 한반도의 놀이 음악과 놀이 춤의 기원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강강술래는 한반도의 남서 해안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고, ‘놋다리밟기’와 ‘월월이청청’ 등 내륙 지방의 다른 노래가 곁들어진 원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여성들은 둥그런 모양을 만들기 위해 손을 맞잡는다. 여러 가지 놀이를 곁들이고 있는 강강술래는 노래에서 거듭 반복되는 ‘강강술래’라는 후렴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강강술래는 원래 15세~20세까지의 젊은 여성들이 행했던 것이고 때로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성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는 창조적인 발랄함이나 힘보다는 능숙한 기예를 뽐내는 40대, 50대의 중년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전승하게 되었다. 강강술래는 전통적으로 설·대보름·단오·백중·추석·중구절(重九節) 등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에 행해졌으며, 그 가운데 추석에 하는 것이 가장 규모가 컸다. 그래서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에 널리 이루어지는 행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추석날 밤, 밝은 달밤에 수십 명의 젊은 농촌 여성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해는 남성을 상징하며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둥근 형태로 표현하므로, 강강술래는 고대의 미학을 반영하는 주술적 성격 가운데서도 모방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이 춤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만이 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것은 가임 연령 여성들의 특권이기도 했다. 강강술래는 한국 고유의 원시종합예술이다. 노래의 가사는 보통 사람들이 지은 것이며, 앞소리(先唱)을 하는 사람이 빠르기를 정한다. 함께 춤추는 사람들은 앞소리를 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다음 가사를 노래하며 이것을 뒷소리(合唱)라고 한다. 강강술래에는 민속 신앙과 민속 춤 이외에 민속 음악이 결합되어 있으며,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도 함께 곁들여져 흥을 돋운다. 강강술래가 너무 흥겹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달이 뜨는 초저녁부터 달이 질 때까지 자신도 모르게 춤추기를 계속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소리를 하는 사람의 소리 빠르기에 따라 음악은 긴강강술래(늦은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잦은강강술래)로 나뉜다. 춤추는 사람들의 동작은 음악의 빠르기에 따라 달라진다. 춤이 진행되는 막간에는 농촌이나 어촌의 생활을 표현한 놀이가 진행된다. 이들 놀이 가운데는 남생이놀이(한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 춤을 추면 그 다음 사람도 들어가 앞사람의 흉내를 낸다), 고사리 따기, 청어 엮기, 기와 밟기, 덕석몰이, 쥔쥐새끼놀이(꼬리를 집어 올리기), 문지기놀이, 가마등, 수건돌리기 등이 있다. 강강술래의 원형은 고대 중국의 문헌에 의하면 약 2,000년 전에 존재했던 마한의 농촌 풍습에서 발견된다. 인류 역사상 무형의 문화유산이 이처럼 오래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강강술래가 이처럼 오래 전해진 것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그처럼 오래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전통 사회는 남성 중심이었으며, 젊은 여성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밤에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여성들도 밝은 달밤에 강강술래를 통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오랫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로할 수 있었다. 축제 때는 여성이 평소의 제약을 벗어나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강강술래는 또 역사적인 기능을 하기도 했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은 여자들에게 밤에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강강술래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았을 때 깜박거리는 그림자 때문에 일본의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병력을 과대평가했고, 결국 아군이 승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사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거기에는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쓰인 가사에는 일제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농촌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도시로 떠났기 때문에 강강술래를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국가의 문화·교육 정책에 힘입어 강강술래는 한반도의 남서쪽 지방이라는 전통적인 지역 기반을 벗어나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오늘날 강강술래는 초등학교의 음악 교육 과정의 일부에 편입되어 있으며, 전국의 민간 축제에서뿐 아니라 많은 중·고·대학교에서도 널리 행해지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예술 치료 요법 분야에서 강강술래의 응용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강강술래는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보이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비만 여성의 다이어트를 위한 대체 요법이나, 외로운 노인들의 웰빙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의 가능성까지도 탐구되고 있다.
South Korea 2009 -
대목장(大木匠),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
대목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전통적으로 ‘목장(木匠)’또는 목수라고 불렀다. 목장이 담당하는 여러 가지 작업 중에서 ‘대목’은 특히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 등과 같은 목조 건축물을 짓는 일을 일컫고, 그런 대목의 일을 담당하는 목수를 대목장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통적인 목조건축물을 일컬을 때에도 ‘대목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목장은 ‘소목장(小木匠)’과 ‘대목장(大木匠)’으로 구분되는데 소목장은 목재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가구나 생활용품인 궤·문갑·책상·밥상·장롱 등을 제작하는 목수를 말하며, 대목장은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목수를 일컫는다. 대목장은 전통 건축물의 기획·설계·시공뿐만 아니라 대목장 아래에서 일하는 목수들에 대한 관리 감독까지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장인이다. 따라서 대목장의 기술은 수십 년에 걸친 교육과 현장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 대목장은 전통 기술과 지식을 건축 과정에 적용한다. 따라서 대목장은 유네스코협약 제2조 제1항에서 ‘지식 및 기술’로 정의한 무형유산의 정의와 합치하며, 전통의 자재 및 공법을 따르기 때문에 협약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전통 공예기술’에도 합치한다. 한국에서 목조 건축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창덕궁과 불국사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물도 역시 대목장의 지휘 하에 건축되었다. 이러한 보물과 같은 건축물들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 자체로서 평가받았다기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전통적 건축물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이러한 이유로 대목장은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계승자이자 보호자로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인식은 대목장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건축물을 완성하는 작업은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동시에 요구한다. 대목장은 전통 기법에 따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복원하기도 하고 새로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전통 건축물을 재창조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그 과학적·예술적 기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목공 전통의 재창조에 기여하고 있다.
South Korea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