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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ICH Elements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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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 (宗廟祭禮)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 ‘대제(大祭)’라고도 부른다.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로 정전(19실)과 영녕전(16실)이 있다. 종묘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으나, 해방 후부터는 5월 첫 일요일에 한번만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인 의식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취위(就位) →영신(迎神) →행신나례(行晨裸禮)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籩豆) →망료(望僚)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되며,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 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South Korea 2001 -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 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키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제례의식의 각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종묘악장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무인 보태평지무(선왕들의 문덕을 칭송)와 무무인 정대업지무(선왕들의 무공을 찬양)가 곁들여진다. 종묘제례악은 본래 세종 29년(1447) 궁중회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하였으며 세조 10년(1464) 제사에 적합하게 고친 후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는 종묘대제에서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연주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South Korea 2008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濟州 칠머리당 영등굿)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혹독한 환경 조건 때문에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기에 힘들었으므로, 섬사람들은 바다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조선시대의 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부도덕한 공양을 가치 있게 여기는 풍습이 있으며, 숲, 호수, 산, 나무, 돌 등의 신령을 받드는 제사가 이루어진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제주도에는 여러 가지 제의적 활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영등굿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등의 때가 되면 잔잔한 바다와 풍어를 기원하는 여러 굿이 섬 전역에 걸쳐 벌어진다. 이들 굿 가운데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가장 중요하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라는 이름은 바람의 여신에 대한 굿임을 의미하지만, 마을의 여러 수호신과 바다의 용왕에게 바치는 굿이기도 하다. 영등은 숭배를 받기도 하지만 바다를 휘저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영등이 섬에 와 있는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제주의 바다는 특히 험난하다. 섬사람들은 영등이 지나가는 자리의 바닷가 조개류는 껍질만 남게 된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영등신이 조개류의 속을 다 까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등이 떠나는 날이 되면 영등은 해안을 따라 씨를 뿌려주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며, 영등이 떠나면서 바다를 다시 맑게 해서 해조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등이 머물고 있는 때는 가장 중요한 때이며, 사람들은 영등에게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칠머리당에서 굿을 벌여 영등이 머무는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영등굿이 치러지는 마을 이름(건입동의 속칭이 ‘칠머리’이다)을 따서 이름 붙인 칠머리당이라는 사당에서는 영등, 그리고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이라는 부부신(夫婦神)을 모신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지역민의 요구(도원수감찰지방관이 영역)를 담당하는 신이며, 요왕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계(요왕해신부인의 영역)를 담당하는 신이다. 사당에는 아래의 표와 같이 남녀 신의 위패를 모신다. 음력 2월 1일이 되면 칠머리당에서는 영등신이 들어오는 영등환영제를 열고 2월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연다. 산신을 모시는 제사(당제)는 한국의 여러 지방에서 음력 정월에 거행되는데, 제주도의 여러 촌락에서도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다. 산신을 모시는 제사와 영등을 모시는 제사는 오직 제주도에서만 ‘영등굿’이라는 하나의 무속 제례와 결합되어 있다. 단순한 영등환영제와 비교할 때, 무속 제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간주되며 용왕에 대한 제사까지 포함하고 있는 영등송별제는 그 행사가 매우 화려하고 더욱 중요하다. 영등환영제는 신령을 불러 사당으로 들이는 것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행운을 비는 초감제(初監祭)로부터 시작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로 이어진 뒤 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3막 연희인 석살림굿으로 끝낸다. 영등송별제도 역시 초감제로 시작하지만, 거기에는 마을의 사당으로 들어오는 의례 본향듦이 포함되어 있다. 본향듦은 마을의 수호신인 남녀 부부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에게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것이다. 이 제례에서는 3명의 고을 관리가 부부 신에게 술을 올리며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빈다. 그 다음에 모든 신에게 술과 떡을 권하여 올리는 추물공연, 용왕과 영등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풍어와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요왕맞이, 수수의 씨로 점을 치고 해조류의 씨를 뿌리는 행사인 씨드림이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수탉을 던져 마을 전체의 재앙을 막기 위한 도액막음을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해녀들을 위해 점을 치는 순서도 있다. 그 다음에 마을의 노인들이 바다에 짚으로 만든 배를 띄워 보내는 배방선이 이어진다. 영감놀이는 배상선 앞에 ‘굿중놀이’로 삽입되어 있다. 영등송별제는 마지막에 여러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끝맺는다.
South Korea 2009 -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
씨름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민속놀이 중 하나인 씨름은 벨트와 비슷한 모양의 긴 천으로 된 샅바를 허리와 한쪽 허벅지에 두른 2명의 선수가 상대의 샅바를 잡고 다양한 기술을 발휘하여 땅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경기다. 명절이나 장날, 잔치 등의 다양한 행사에서 씨름 경기가 열린다. 마을에서 어떤 장소든 씨름 경기를 할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공동체 구성원 전 연령이 참여할 수 있다. 성인 경기에서 최종 우승자는 풍년을 상징하는 황소를 부상으로 받고, ‘장사’라는 자격을 얻는다. 경기를 마친 후 장사는 황소를 타고 마을을 행진하며 축하를 받는다. 부상으로 소를 수여하는 풍습에는 농사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South Korea 2018
ICH Materials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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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체 응아 챰
부탄 동부 다메체(Drametse) 지역에서 연행되는 탈춤을 독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응아(Nga)는 ‘북’을, 그리고 챰(Cham 혹은 Chham)은 ‘제의용 가면 춤’을 뜻하는 말로, 다메체 응아 챰은 8세기경 부탄에 티벳 불교를 전파한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기리는 다메체 축제 기간 동안 연행하는 춤이다. 부탄 달력으로 일 년에 두 번(다섯 번째 달과 열 번째 달) 열리는 이 축제는 수 세기 동안 ‘외기엔 텍촉 남될 쵤링’(Ogyen Tegchok Namdroel Choeling) 사원에서 주관하고 있다.\n\n다메체 응아 챰은 천상계에 사는 남녀 영웅들의 춤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춤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평화로운 신의 모습을 묘사하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춤과 분노의 신을 표현하는 빠르고 격정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다메체 응아 챰은 10명의 연주자들과 16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연행한다. 승복을 입은 무용수들은 실존하거나 혹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 모양을 본 딴 목재 가면을 쓴 채 축원 의식무를 연행한 후, 차례로 주 무대인 사원 마당에 등장해 춤을 춘다. 악단은 심벌즈와 나팔 그리고 방 응아(Bang Nga, 긴 원통형 북), 락 응아(Lag Nga, 손에 드는 원형 소고), 응아 첸(Nga Chen, 구부러진 북채로 연주하는 북)을 연주한다.\n\n부탄 사회에서 다메체 응아 챰은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춤을 영적인 힘의 원천으로 여긴다. 다메체와 인근 지역의 불교 신도들은 춤을 관람하며 복을 기원한다. 19세기 들어 부탄의 여러 지역에 다메체 응아 챰의 다양한 형식이 소개되면서 오늘날에는 특정 공동체의 행사에서 벗어나 부탄의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습 시간의 부족, 훈련 체계의 부재, 그리고 젊은 계층의 관심 저하로 인해 연행자와 전수자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8년 유네스코는 다메체 응아 챰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n\n출연자: 느가왕 톈진\n예술감독: 느가왕 톈진 (NgawangTencin)
Bhutan -
다메체 응아 챰
부탄 동부 다메체(Drametse) 지역에서 연행되는 탈춤을 독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응아(Nga)는 ‘북’을, 그리고 챰(Cham 혹은 Chham)은 ‘제의용 가면 춤’을 뜻하는 말로, 다메체 응아 챰은 8세기경 부탄에 티벳 불교를 전파한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기리는 다메체 축제 기간 동안 연행하는 춤이다. 부탄 달력으로 일 년에 두 번(다섯 번째 달과 열 번째 달) 열리는 이 축제는 수 세기 동안 ‘외기엔 텍촉 남될 쵤링’(Ogyen Tegchok Namdroel Choeling) 사원에서 주관하고 있다.\n\n다메체 응아 챰은 천상계에 사는 남녀 영웅들의 춤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춤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평화로운 신의 모습을 묘사하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춤과 분노의 신을 표현하는 빠르고 격정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다메체 응아 챰은 10명의 연주자들과 16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연행한다. 승복을 입은 무용수들은 실존하거나 혹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 모양을 본 딴 목재 가면을 쓴 채 축원 의식무를 연행한 후, 차례로 주 무대인 사원 마당에 등장해 춤을 춘다. 악단은 심벌즈와 나팔 그리고 방 응아(Bang Nga, 긴 원통형 북), 락 응아(Lag Nga, 손에 드는 원형 소고), 응아 첸(Nga Chen, 구부러진 북채로 연주하는 북)을 연주한다.\n\n부탄 사회에서 다메체 응아 챰은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춤을 영적인 힘의 원천으로 여긴다. 다메체와 인근 지역의 불교 신도들은 춤을 관람하며 복을 기원한다. 19세기 들어 부탄의 여러 지역에 다메체 응아 챰의 다양한 형식이 소개되면서 오늘날에는 특정 공동체의 행사에서 벗어나 부탄의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습 시간의 부족, 훈련 체계의 부재, 그리고 젊은 계층의 관심 저하로 인해 연행자와 전수자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8년 유네스코는 다메체 응아 챰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n\n출연자: 느가왕 톈진\n예술감독: 느가왕 톈진 (NgawangTencin)
Bh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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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 드라미체 느가참
부탄 동부 다메체(Drametse) 지역에서 연행되는 탈춤을 독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응아(Nga)는 ‘북’을, 그리고 챰(Cham 혹은 Chham)은 ‘제의용 가면 춤’을 뜻하는 말로, 다메체 응아 챰은 8세기경 부탄에 티벳 불교를 전파한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기리는 다메체 축제 기간 동안 연행하는 춤이다. 부탄 달력으로 일 년에 두 번(다섯 번째 달과 열 번째 달) 열리는 이 축제는 수 세기 동안 ‘외기엔 텍촉 남될 쵤링’(Ogyen Tegchok Namdroel Choeling) 사원에서 주관하고 있다.\n\n다메체 응아 챰은 천상계에 사는 남녀 영웅들의 춤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춤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평화로운 신의 모습을 묘사하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춤과 분노의 신을 표현하는 빠르고 격정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다메체 응아 챰은 10명의 연주자들과 16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연행한다. 승복을 입은 무용수들은 실존하거나 혹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 모양을 본 딴 목재 가면을 쓴 채 축원 의식무를 연행한 후, 차례로 주 무대인 사원 마당에 등장해 춤을 춘다. 악단은 심벌즈와 나팔 그리고 방 응아(Bang Nga, 긴 원통형 북), 락 응아(Lag Nga, 손에 드는 원형 소고), 응아 첸(Nga Chen, 구부러진 북채로 연주하는 북)을 연주한다.\n\n부탄 사회에서 다메체 응아 챰은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춤을 영적인 힘의 원천으로 여긴다. 다메체와 인근 지역의 불교 신도들은 춤을 관람하며 복을 기원한다. 19세기 들어 부탄의 여러 지역에 다메체 응아 챰의 다양한 형식이 소개되면서 오늘날에는 특정 공동체의 행사에서 벗어나 부탄의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습 시간의 부족, 훈련 체계의 부재, 그리고 젊은 계층의 관심 저하로 인해 연행자와 전수자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8년 유네스코는 다메체 응아 챰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n\n출연자: 느가왕 톈진\n예술감독: 느가왕 톈진 (NgawangTencin)
Bhutan Nov 21, 2011 -
시간의 모자이크
전통 펠트 카페트 ‘알라키이즈’와 ‘쉬르닥’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긴급보호목록 등재)\n키르기스의 전통 수공예를 대표하는 알라키이즈(Ala-kiyiz)는 문자 그대로 ‘알록달록한 펠트’라는 뜻이며, 상단에 도드라지게 장식물들을 단 펠트 융단을 나타낸다. 알라키이즈는 장식적 요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도 가정용 융단으로 널리 사용 된다. 쉬르닥(Shyrdak)은 펠트 융단을 만드는 가장 복잡한 기술인 모자이크 기법으로 제조된다. 쉬르닥의 매우 중요한 특질 중 하나는 내구성에 있다. 쉬르닥은 평균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고, 더 오래 가는 경우도 있다.
Kyrgyzst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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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고등교육 네트워크(APHEN-ICH) 국제세미나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다양성과 동질성
여러 국가에 걸쳐 분포하는 무형유산의 기본적 특성과 문화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형유산은 국경을 초월한 공유성을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과 확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경계를 국경과 동일시하는 근대 국민국가 체계로의 전환은 ‘국가 내 문화’ 또는 ‘경계 내 문화’라는 개념을 형성하였으며, 문화의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n\n문화의 배타적 소유권 개념은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도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문화유산과 문화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갈등이 과도한 등재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 분위기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유네스코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지역 협력을 증진하며 국제 보호 활동이라는 협약의 취지를 되살리는 동시에, 국가 간 갈등에 대한 예방과 이미 발생한 갈등의 해결방안으로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유 무형유산의 공동등재를 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공동등재를 강조하며, 문화소유권으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이행지침을 개정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한 연계성이 지역적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n\n이와 더불어 당사국은 소지역 및 지역적 수준에서 협력하도록 관련 공동체, 전문가, 전문센터, 연구소가 특히 그들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하여 연계성을 발전시키도록 장려되고 있다. 특히 2018년 11월 모리셔스에서 개최된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씨름이 남북 공동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무형유산이 민족 간 문화적 이해와 연대를 증진하고 평화 구축에 이바지함을 보여준다. 비단 공동등재된 무형유산뿐만 아니라 공유성이 무형유산의 근간임을 인정할 때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국가 간 평화 달성의 초석이 됨을 인지해야 한다.\n\n따라서 본 세미나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동질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옻칠 등 아태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는 비슷하지만 다양한 무형유산을 살펴보며 무형유산이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하고, 포괄적 국제협력과 평화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South Korea 2021 -
2020 무형유산 NGO 컨퍼런스 : 위기의 시대, 무형유산과 회복탄력성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유네스코 인가 NGO 협의체인 무형유산 NGO 포럼과 공동으로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 간 ‘2020 무형유산 NGO 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전 세계 10개국 11명의 선정된 발표자를 포함한 15명의 참가자들은 코로나 시대 변형, 적용된 각 국의 다양한 활동 사례와 사업 경험을 공유하고, ‘뉴 노멀’ 시대 무형유산의 회복탄력성을 위한 연대를 제안하였다.\n한국어 자료는 149쪽부터 수록되어있다.\n\n세션 1: 코로나19 시대,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NGO의 역할\n\n특별강연 1: '회복탄력성 체계 분석과 무형유산, NGO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도전과제'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경제협력개발기구 멕시코지부)\n1. '무형유산 보호와 웰빙을 위한 무형문화유산 관리 방안' (카롤리나 베르무데즈, 에트놀라노재단)\n2. '홍콩 윤롱지구 공동체 기반 무형유산을 위한 거시적 발전 모델 구축' (카이퀑 초이, 생명회복기금)\n3. '코로나 대항 매개체로서의 짐바브웨 토착지식' (알링턴 엔드로브, 아마구구국제유산센터)\n4. 'ARHI의 전통염색기술 활성화 노력' (디비야 보라, 사회과학연구소)\n\n세션 2: 코로나19가 NGO 활동에 가져온 변화\n\n1. '코로나19, ICCN 소속 도시들의 대응방안' (훌리오 나세르, 무형문화도시연합)\n2. '코로나 시대 예술과 문화교육 혁신' (제프리 풀린, 크리에이티브 제너레이션)\n3. '파키스탄 칼라샤 지역의 무형유산을 통해 보는 유산교육 촉진' (지아수딘 피르 & 미자 우바이드, THAPP)\n4. '온라인 활동으로의 전환: NGO와 무형유산 공동체 간 디지털 간극'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n\n세션 3: 통섭: 무형유산 교육 분야 원형과 전형\n\n특별강연 2: '지역 불균형 : 2003년 협약에 따른 인가 NGO의 균형 대표성 문제' (마티 하카마키, 핀란드민속음악원)\n1. '포스트 코로나, 공예 부문 공동체 회복탄력성 구축' (조셉 로, 세계공예협회)\n2. '예술과 영향력: 문화분야 기업 참여 과제' (니콜라스 포젝, 콜롬비아대학교)\n3. '청년 교육 강화를 통한 공동체 역량강화: 알프스 남서부의 무형유산 사례를 통하여' (알레시오 레 &지울리아 아반자, 산타가타문화경제재단)\n\n
South Kore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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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아태센터 간 무형문화유산 시청각자료 디지털화 협력 워크숍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문화재청의 지원과 피지국립박물관, 미크로네시아연방 야프역사보존연구소의 협력 하에 4일간 무형유산 관련 시청각 자료 디지털화에 관한 센터-태평양 협력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전주와 서울에서의 개최된 워크숍은 무형유산 관련 아날로그 시청각 자료를 디지털화하기 위한 방안과 기술에 대한 검토와 태평양의 전통과 예술을 세계에 보급하고 활용하기 위한 논의로 구성되었습니다.\n\n이 간행물에는 피지, 미크로네시아연방 등 태평양 2개국 및 한국의 아날로그 자료현황과 디지털화 방안에 관한 8건의 발표 자료와 함께 현장방문 관련 기관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outh Korea 2017 -
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25 (그림과 스토리텔링)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25권의 테마는 「그림과 스토리텔링」입니다.
South Kore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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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정부간위원회 특집 자연의 섬 ‘제주’와 ‘제주인’의 지혜제주도를 처음 온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있다. 바로 검은 돌이다. 제주는 화산섬으로 온통 돌투성이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내뿜은 화산탄들이 흩어져 제주의 모든 땅들을 뒤덮고 있다. 지금도 밭에 가면 흔하게 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하지만 13세기부터 제주 사람들은 밭에 흩어진 쓸모없는 돌들을 모아 밭의 경계에 돌담을 두르고 경작지를 확보하였다. 현재 그 길이가 22,100Km에 이른다.\n\n이 돌들은 얼기설기 쌓여 있어 대충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제주인의 지혜가 숨어있다. 그 열쇠는 바로 바람이다. 제주는 여름에 불어오는 태풍은 물론이고 4계절 내내 강한 바람이 분다. 빈틈 없이 촘촘히 돌담을 쌓는다면 제주 사람들은 매일 들에 나가 넘어진 돌을 다시 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멍이 난 울퉁불퉁한 제주의 돌담은 바람의 힘을 떨어뜨리고 통과시킨다. 삶에서 얻은 지혜이다.\n\n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이다. 탐라의 시작과 관련된 이야기로는 땅에서 솟아난 세 신인(神人)이 탐라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이곳은 성스럽게 여겨져 ‘삼성혈’이라 불린다. 이는 한국 본토의 고대 건국신화가 하늘에서 알로 태어난 것과는 달리 땅에서 솟아난 것으로 문화적 원형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n\n제주도에는 1만8천의 신이 있다. 제주도민들은 세상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거친 바람과 물이 고이지 않는 척박한 화산 땅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던 제주도민들은 거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기 위해 신을 찾았던 것이다.\n\n제주의 마을에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들의 거처인 ‘본향당’들이 있다. 이곳엔 ‘심방’이라 불리는 무당이 있다. 이들은 제주민들을 신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해녀들과 어부들을 위해 음력 2월 영등굿이 진행된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으로 파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해녀들과 어부들에겐 바다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신이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는 이 기간 동안 30여 곳에서 바다의 신을 위한 의례를 펼친다.\n\n제주에는 여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이들은 다른 나라의 여신과 달리 남신들에게 기대거나 속박되지 않는다. 거대한 거인으로 치마폭에 흙을 날라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 생명을 잉태시키는 ‘삼승할망’, 농업을 관장하는 ‘자청비’ 등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제주여성들의 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유교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에 나타나는 남자 중심의 사회와는 달리 제주도의 여성들은 자존감이 매우 높다. 경제활동도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n\n그 대표적인 것이 제주해녀이다. 작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된 11차 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는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여성 중심의 사회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화산섬으로 물이 고이지 않아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제주도에서 땅이 아닌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던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해녀가 되었으며 혼자가 아닌 다 같이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n\n제주의 자연은 척박하며 사람이 살아가기엔 모자란 땅이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이를 이용하여 살아왔다. 그 곳엔 1만8천의 신들이 있고 이웃이 있다. 이것이 제주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온 힘이다.\n\n사진 : Jeju haenyeo (female divers) crossing low stone walls to get to the sea © Jeju Haenyeo MuseumYear2017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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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작성 노력무형문화유산은 가장 보호받지 못한 예술적 유산 중 하나이다. 오늘날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화되는 추세에서 우리는 무형문화유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타지키스탄의 경우 무형문화유산 보호 노력의 첫 결실은 샤쉬마콤(Shashma qom)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일이었다.Year2010NationSouth Korea